침공 115일만에 공연 재개…건물 앞엔 방어용 모래포대 '겹겹'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꽃다발을 들고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젊은 남성, 한껏 차려입고 극장을 찾은 노부부, 공연 준비로 분주한 백스테이지….
여느 극장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전장 한복판에서라면 가장 간절할 법한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다.
러시아 침공 이후 적지 않은 피해를 봤던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시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오페라극장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기지개를 켰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데사 오페라극장이 러시아의 침공 115일 만인 전날 다시 문을 열고 공연을 재개했다.
이곳은 1810년 처음 건립돼 오데사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국립극장이다.
극장 수석 지휘자인 뱌체슬라우 체르누호볼리치는 NYT에 "열흘 전 우크라이나 군 당국으로부터 공연 재개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오데사가 최근 몇 주간은 상대적으로 고요하긴 했지만, 사실 오데사에서 70마일(약 112km) 정도 떨어진 미콜라이우에서는 거의 매일 러시아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극장 건물 앞에는 방어용 모래주머니가 겹겹이 바리케이드를 쳤다.
공연 시작 전에는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공연장 내 대피소로 이동하십시오'라는 안내가 나오기도 했다.
체르누호볼리치는 "전쟁 초반에는 폭발과 공습 사이렌이 두려웠고, 세계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인간은 또 적응하기 마련"이라며 "쉽지 않지만 우리는 '문명'이 승리하리라고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공연은 우크라이나 국가 연주와 함께 막이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중창을 비롯해 오데사 태생의 작곡가인 콘스탄틴 단케비치의 곡 등이 무대를 채웠다.
엄격한 보안 규정으로 객석은 전체의 3분의 1만 찼지만,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서는 '브라보'라는 외침과 함께 갈채가 쏟아졌다.
줄리엣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마리나 나즈미텐코는 "예술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살아남고, 또 우리의 본질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겐나디 트루하노프 오데사 시장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데사,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다고 NYT는 전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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