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가격상한 석유' 수출허용 논의 속도
NYT "서방에 부메랑 된 제재…러 비웃는 중"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고유가에 휘청거리는 미국이 유럽연합(EU)에 러시아를 겨냥한 원유수출 제재를 일부 완화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러시아 원유에 대해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자는 미국의 주장이 EU 27개 회원국으로부터 잠정적인 동의를 얻기 시작했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구상은 러시아산 원유 수출은 허용하되 가격에 상한을 두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러시아 원유의 수출 가격이 낮아져 제재 효과를 살리면서도 공급을 증대해 글로벌 유가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EU는 이달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와 함께 올해 말부터 러시아산 석유 수송 선박에 대한 보험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경우 러시아산 원유 수출 급감으로 고유가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은 '가격 상한제'라는 절충안을 들고나왔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상한선 아래로 떨어질 경우, 러시아 원유 운송에 대해 보험을 허용해주자는 내용이다.
러시아 경제 제재에 앞장섰던 미국이 이제는 예외 조치가 필요하다며 EU에 제재 완화를 호소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제재에 대한 예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가격 예외 조치는 식료품값·유가 폭등으로 고통받는 저소득·개발도상국으로의 파급효과를 막는 데도 중요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WSJ은 다만 옐런 장관의 '가격 상한제' 도입 구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어렵사리 러시아 석유에 대한 제재에 합의한 EU가 여기에서 크게 후퇴한 이 방안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격 상한제를 어떻게 강제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주말 유럽으로 이동해 EU, 영국, 캐나다 등이 포함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을 만나서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지만 유럽에선 합의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다고 WSJ은 지적했다.
서방은 러시아 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원유에 대해 경제 제재를 단행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전비를 마련할 길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결국에는 백기를 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가 대놓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서방의 제재는 효력을 잃었다.
반면 미국과 제재 동참 국가들은 유가 폭등과 이에 따른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40년 만에 나타난 최악의 물가 상승, 그중에서도 특히 치솟는 휘발유 가격 탓에 지지율이 바닥으로 추락한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 안정화를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를 낮추기 위해 대외적으로 EU 국가들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정유회사들에 생산량 증대를 압박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내 휘발유 공급을 늘리기 위해 원유나 정제유의 수출 제한이나 금지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자 미국 정유회사들은 이날 백악관에 수출 금지를 하지 말아 달라고 맞서는 등 고유가를 잡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은 '산 넘어 산'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원유 수출을 옥죄려던 서방의 노력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NYT는 대러시아 원유 제재로 신음하는 쪽은 미국이라며 러시아는 이를 비웃고 있다고도 했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은 지난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경제 회의에서 "유럽이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수십 % 줄였지만 가격은 몇 배 올랐다"면서 "우리는 유럽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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