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 방침을 내놓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우리 노동시장은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등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노동 규범과 관행으로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 왔다. 신산업이 대두하고 경영 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실에 비춰 탄력적이고 유연한 대처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 방향이 성장 가능성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없지 않다. 정부의 개편 방침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상황을 심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문제는 일반 국민 생활과 직결된 중요 사안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 등에 관해 더욱 심도 있는 검토와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
정부가 발표한 개혁 방향에서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근로시간 개편 문제다. 근로시간 개편 방안은 현행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노사 합의를 거친다는 전제가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또한 노사가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주 최대 52시간제는 2018년 여야 합의로 도입됐다. 정부 발표 내용에 근거하면 현재 1주에 최대 12시간 가능한 연장 근로시간이 한 달 기준으로 최대 48~60시간(4~5주) 으로 늘어난다. 평균적으로 계산하면 경우에 따라선 월 단위 최대 연장 근로 시간이 52.1시간이 될 수 있다. 1주일간 근로 시간이 92.1시간(40+52.1시간)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 무리한 근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심하게 다뤄야 할 일이다. 개별 산업 현장의 여건 등에 따라선 월 단위 연장근로 관리가 필요한 사례가 없지는 않겠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라도 1주일 평균 연장근로 시간을 엄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한 규정을 두거나 보완해 나갈 수 있는 협의가 절실해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개편 방향을 발표한 데 대해 윤 대통령은 24일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서 나온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윤 대통령은 "내가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아침 언론에 나와 확인해 보니, 노동부에서 발표한 게 아니라 부총리가 노동부에다가 아마 민간연구회라든가 이런 분들의 조언을 받아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좀 검토해 보라고 이야기해 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 장관이 사전에 일정이 예고된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내용을 두고 다소간 혼선이 불거진 듯한 모양새다. 정부 내에서조차 체계적이고 면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어설프게 발표가 나온 게 아닌지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의 개혁 방향 발표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노동시장 관련 방침 내용 중 상당 부분은 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 노동부는 내달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발족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연구와 더불어 경영계와 노동계,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세밀하게 수렴해 가는 과정도 우선돼야 할 것이다. 노동시장의 미래상을 염두에 두고 최적의 정책을 발굴해 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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