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피란처 뻔히 알면서도 500㎏ 포탄 2개 투하"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희생자가 속출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극장을 겨냥한 공격은 러시아가 민간인이 숨어있던 이곳에 작정하고 2차례 폭격을 퍼부으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했다.
AP, AFP통신에 따르면 앰네스티는 30일(현지시간) 내놓은 보고서에서 "마리우폴 극장에서 일어난 폭발은 러시아의 폭격기에서 투하된 500㎏짜리 거대한 포탄 2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극장이 우크라이나군이 벌인 '가짜 깃발'(false flag·위장전술) 공격을 받은 것이라는 러시아 측 주장을 일축했다.
앰네스티는 3월 16일 벌어진 마리우폴 극장 폭격 생존자와 증인 50여 명을 인터뷰하고, 관련 사진과 영상, 위성 이미지, 극장 평면도 등 증거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러시아가 앞서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를 육로로 연결하고 아조우해를 장악하는 데 핵심 요충지인 까닭에 러시아는 개전 초반부터 마리우폴에 화력을 집중했다.
러시아군은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약 1천300명이 대피한 마리우폴의 극장 건물을 3월 16일 폭격했고, 이 공습으로 극장 건물 양쪽 벽과 지붕 대부분이 무너지면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리우폴 시 당국은 사망자를 300명, AP통신은 600여 명으로 추정했다.
물리학자들과 무기 전문가들은 잔해 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 폭격에 쓰인 무기가 러시아 제트기에서 투하된 500㎏짜리 포탄 2개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는 2차례의 폭발음을 들었다고 말한 목격자 다수의 증언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AP는 지적했다.
또한, 폭격이 이뤄진 날 오전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당시 하늘이 쾌청해 조종사가 극장 건물 마당에 러시아어로 적혀 있던 '어린이'라는 글자를 충분히 봤을 것이라며, 모든 증거가 러시아가 민간인이 대피한 마리우폴 극장을 일부러 겨냥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옥사나 포칼추크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범죄 '의혹'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 이제 마리우폴 극장 포격이 러시아 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임을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포칼추크 대표는 "마리우폴에는 매우 많은 군사적 목표물이 존재하는데도, 러시아는 민간인 목표물을 선택했다"며 "아마 러시아 지휘관들도 드론이나 위성 사진 등을 통해 이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앰네스티는 그러나 당시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당초 추정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여겨진다며, 앰네스티 조사원들이 확인한 사망자는 12명이라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극장 폭격이 이뤄지기 이틀 전부터 공식·비공식적인 피난로가 열리면서 극장에 몸을 피한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극장의 노천 부엌에서 일했던 한 자원봉사자는 그날 역시 800명분을 요리하고 있었다"고 밝혀, 희생자 수 파악에 한계를 시사했다.
포칼추크 대표는 "목격자들이 시신와 유해의 일부를 본 것을 토대로 (상황을)재구성하려 노력했다"면서도 "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망자의)최종 숫자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욱 끔찍한 것은 희생자들의 신원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