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노동자, 사우디 외교관 상대로 승소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영국 대법원이 필리핀 여성 가사도우미를 착취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이 면책특권 뒤에 숨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BBC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영국 대법원은 이날 3대2로 사우디 외교관 칼리드 바스파르 가 필리핀 가사도우미 조세핀 웡(30) 씨에게 급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한 것은 일종의 영리 활동으로 외교관 면책 특권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961년 발효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31조에는 외교관이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지만, 업무 외 영리 활동은 민사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재판에서 사우디 외교관은 면책 특권을 주장하며 원고의 주장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국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웡 씨 신체와 그녀의 노동에 대한 바스파르 씨의 통제가 너무 광범위하고 전제적이어서 그녀는 가사 노예나 다름없었다"면서 "혐의 사실에 비춰 바스파르 씨는 주도면밀하고도 체계적으로 2년 동안 웡 씨의 노동을 착취했다"고 밝혔다.
영국 대법원은 또 그가 처음에는 계약된 금액보다 급료를 적게 주다 나중에는 아예 급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사적 이익을 위한 분명한 영리 활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대법원은 이어 "외교관들이 이주민 가사 도우미를 착취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번 재판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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웡 씨의 변호인 누스라트 우딘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문제를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매우 큰 판결"이라고 반겼다.
바스파르의 변호인은 이번 판결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고, 영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도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바스파르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웡 씨는 지속적인 착취 끝에 2018년 가까스로 도망쳐 고용심판원에 바스파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BBC는 전했다.
그는 첫 7개월 동안 아무런 급료를 받지 못했고, 이후 6개월분의 급료로 1천800파운드(약 280만 원)를 한꺼번에 받았으며, 이후엔 아예 급료를 받지 못했다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그는 또한 쓰레기를 버릴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집 안에 갇힌 채 언어폭력에 시달렸고, 끼니도 주인집 식구들이 집에 있을 때 이들이 남긴 음식으로 때워야 했다고 밝혔다.
또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 일해야 했고, 주인이 부르면 즉각 달려갈 수 있도록 초인종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말했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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