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선거 없는 '황금의 3년' 열려…선거 후 개각·당직 인사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10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10월 중의원(하원) 선거에 이어 참의원 선거까지 승리를 견인한 기시다 총리에게는 앞으로 3년간 대형 선거가 없는 '황금의 3년'이 열린다.
자민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기시다 총리가 이번 승리를 발판으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 자민당, 아베 추모 분위기 속 예상 넘어선 압승
일본 참의원 의석수는 248석이며, 의원 임기는 6년이다. 3년마다 전체 의원의 절반을 새로 뽑는다.
11일 NHK 등 일본 언론의 개표 집계에 따르면 이번에 새로 뽑는 125석 가운데 자민당(63석)과 연립여당인 공명당(13석)이 76석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참의원 전체에서 차지하는 여당 의석수는 이번에 선출 대상이 아닌 의석(70석, 자민당 56석, 공명당 14석)을 합쳐 146석으로 과반(125석 이상)을 넉넉하게 유지했다.
선거 전 의석과 비교하면 자민당(119석)은 8석을 늘려 단독으로 절반에 가까운 의석을 점하게 됐다.
선거 임박 시점 일본 주요 언론이 예상한 자민당 의석수의 상한에 가까운 성적으로 평균 예상치를 넘어선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민당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임기 9개월을 지난 기시다 총리의 당내 입지가 탄탄해질 전망이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하원) 의원 임기(4년) 중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는다면 2025년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도 없다.
다만, 2024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는 당내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은 있다.
◇ 온건 파벌 수장 기시다, 자신의 정치색 발휘할까?
자민당 내 전통적인 온건 성향 파벌인 '고치카이'를 이끄는 기시다 총리는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인 자민당 최대 파벌 '세이와카이'(아베파)의 지원을 받아 승리했고 같은 해 10월 총리로 취임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수장인 아베파는 소속 국회의원이 94명으로 4위 파벌인 고치카이(44명)의 두 배를 넘는다. 아베파 의원들은 관방장관, 방위상, 경제산업상 등 주요 각료는 물론 총무회장과 국회대책위원장 등 당내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최대 파벌의 수장이라는 실질적인 힘과 일본 우익의 구심점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기반으로 2020년 9월 퇴임 이후에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기시다 총리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사전에 아베 전 총리와 상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는 아베 전 총리의 주장을 수용해 자신의 정책 방향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런 아베 전 총리가 지난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다. 아베의 부재가 참의원 선거 승리와 함께 기시다 총리가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우선 아베파에는 '절대적 리더'로 군림해온 아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마땅치 않다. 구심력을 발휘할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파가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결속해왔는데 현재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최대 파벌이 불안해지면 당내 역학 관계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당내 역학 구도 변화는 기시다 총리에게는 세력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선거 후 개각 인사 주목…"기시다 선택의 기로"
그런 점에서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 선거 이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각료와 당직 인사를 단행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민당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가 9월까지 내각과 당직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는 8월 하순이라도 개각 및 당 간부 인사를 단행할 의향"이라며 각료 중에는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당 간부 중에는 아소 다로 부총재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유임이 유력시된다고 전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를 9월 초에 실시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면서 "아소 부총재와 내각의 핵심인 마쓰노 관방장관의 유임안이 부상하고 있다. 모테기 간사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 등 당 핵심 간부에 대한 처우가 초점"이라고 전했다.
각료와 당직 인사를 통해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이나 다카이치 정조회장처럼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면서 자신에게는 껄끄러운 강경파 인사를 내친다면 '홀로서기' 정치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정치에 정통한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기시다 총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며 "당권을 장악할 것인지 아니면 유화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모두 함께 가자'는 (기시다의) 기존 노선을 이어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시다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일본에서 통상 선거 끝나고 하는 개각"이라며 "개각을 3~4명 정도 소폭으로 할지, 아니면 대폭으로 단행해 아베 강경파를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임명할지가 관건이다. 후자라면 기시다가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베 전 총리 추모 분위기가 상당 기간 이어지면 자신의 정치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선거 승리가 기시다 총리가 선전했다기보다는 아베 전 총리 피격 사망으로 우익세력이 결집한 효과라는 평가가 당내 팽배해지면 아베파가 힘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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