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로 美국방부 무기 비축량 놓고 고민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우크라이나의 무기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는 서방 국가들의 속내가 갈수록 복잡해진다.
동부 돈바스에서 거세지는 러시아의 공세를 방어하려면 우크라이나에 첨단무기가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최전선의 병력 사정이나 자국의 국방력 유지 등 고려해야 할 변수도 점차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최신 무기를 전달받는다고 해도 사용법을 익히는 데 1∼2주가 필요하다는 점이 일단 문제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부 방어선의 주축인 최정예 포병이 훈련으로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최신 무기 지원 탓에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의 방어력에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인 민주당 잭 리드 의원은 NYT에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지란 없다. 최정예 포병을 1∼2주 훈련해서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이 방법이 현명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개월, 혹은 그 이상으로 길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서방 국가도 자국의 무기고 상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적극적인 지원을 주저하게 하는 요소다.
미국은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에 76억 달러(약 10조원) 규모의 무기를 지원했다. 재블린 미사일 6천500발, 155㎜ 곡사포 126문,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8문 등 첨단무기가 포함됐다.
특히 사거리가 길고 기동력이 뛰어난데다 정확도·파괴력까지 높다는 하이마스는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는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최근 트위터에서 하이마스 덕분에 전장에 '엄청난 차이'가 생겼다고 썼다.
문제는 이런 무기가 신규 생산분이 아닌 비축 물량이라는 점이다. 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계속했다가 무기고가 바닥나 국방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은 앞으로 하이마스 4문 이상을 추가 지원할 방침이다. 하푼 대함미사일이나 위치정보시스템(GPS) 유도 방식의 스마트포탄 엑스칼리버 등도 우크라이나로 전달될 예정이다. 영국과 독일도 유사한 무기체계를 우크라이나로 보낸다는 방침이다.
전투기나 드론 등은 미군의 지원 대상에서 빠졌는데, 훈련에 1∼2주가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러시아를 크게 자극할 우려 등을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에 찔끔찔끔 무기를 지원하는 방식이 우크라이나의 전력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최근 보고서에서 "각국이 포대를 하나씩 하나씩 보내는 방식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군수를 감당하느라 악몽을 치르고 있다"며 "포대 하나하나마다 운송훈련이 필요하고 유지보수에다 군수 망까지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하이마스와 유사한 무기 300문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 국방부 출신 인사도 NYT에 "러시아를 완전히 저지하려면 적어도 60∼100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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