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사우디 방문에 '질세라' 이란 찾는 푸틴

입력 2022-07-18 11:37  

바이든 사우디 방문에 '질세라' 이란 찾는 푸틴
'반미' 이란·'양다리 외교' 터키 수장과 3자 회담
"이란과는 무기 공급, 서방 제재 무력화 방안 논의할 듯"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이 마무리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해 이란과 튀르키예(터키)와 결속 강화에 나선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며 반이란 진영을 규합하려 하자 러시아가 바로 이란을 찾으면서 중동 내 영향력을 확인하려는 양국의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9일 이란을 찾아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3자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푸틴 대통령이 해외 출장에 나서는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번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 가운데 중동 내 자국의 입지를 계속 다져나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러시아가 수년간 중동에 대한 군사·외교적 개입을 통해 얻은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SJ은 분석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를 받아온 전통적인 반미 국가로, 러시아와는 핵심적인 군사·교역 파트너로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월 러시아에서 라이시 대통령을 만났고 지난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열린 카스피해 연안국 정상회의에서 또 한 번 회동한 바 있다.
중동 내 러시아 관계 전문가인 마크 캐츠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이란과의 관계에 매우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미사일 탑재 드론(무인기)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한 달간 최소 두 차례 이란을 방문했다.
이란 기업가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식량 인플레가 극심한 이란에 곡물을 주는 대가로 서방 제재의 우회로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 5월 이란은 러시아로부터 밀 등 곡물 500만t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양측의 협상에는 이란이 서방 브랜드를 대체할 의류나 자동차 부품 등을 러시아 측에 판매하거나, 러시아가 인도 등지로 물품을 수출할 때 이란을 거치는 방안 등이 의제로 올랐다고 WSJ는 설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 진영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전략을 구사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적극적인 중재자로 부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문제와 초기 평화협상에서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어깃장을 놓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러시아와 밀착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러시아 외교전문가 표도르 루키야노프는 "터키는 러시아가 이번 분쟁에서 중재자로 볼 유일한 국가"라며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평화협상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 대통령은 합의 막바지에 있는 우크라이나 곡물 운송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세 지도자가 모인 자리에는 시리아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와 이란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지만 터키는 반군을 지지한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북부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에 대한 새로운 군사 작전을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고 WSJ은 전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 러시아의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루키야노프는 푸틴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시리아에게 여전히 핵심 국가로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러시아는 시리아의 미군 기지 인근에 공습을 단행하는 등 군사 작전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리아 원조 기간을 1년 연장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6개월로 단축시키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을 마친 직후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이 최근 중동과 소원해진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가 비집고 들어가자 미국은 최근 걸프만 아랍 국가와 협력 강화를 통해 역내 영향력을 제고하려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순방 때 "중동은 미국의 국익과 맞물려있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중동 지역을 떠나 그 공간을 중국, 러시아, 이란이 채우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중동 지역의 전통적 친미 국가인 이집트나 아랍에미리트(UAE) 등과도 최근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 제재에도 이들 국가의 지지를 얻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 국가 수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십분 활용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식량 공급을 지렛대로 쓰고 있다.
이집트는 전세계 최대 밀 수입국으로 밀 수요 70%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이같은 실정은 러시아가 이집트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고 WSJ은 평가했다.
비엔나 군축·비확산센터(VCDNP)의 한나 노테 선임연구원은 "서방으로부터 고립되고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이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 외교정책상 중요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서방과는 미래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며 "러시아의 미래는 그보다 더 남쪽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it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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