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이 경기침체 우려로 잇달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미국 애플이 내년에 일부 부서의 고용을 늦추고 지출도 줄일 계획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애플은 경기침체 등 불확실한 시기에 더 신중을 기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 빅테크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황에서 애플마저 긴축 행렬에 가세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암울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2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올 확률'에 대한 답변의 평균치가 49%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월의 18%, 4월의 28%, 6월 44%보다 높아진 것이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2월에는 38%,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20년에는 26%였다. 경제학자들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7%에 그칠 것으로 봤는데 이 역시 1월의 3.3%, 4월의 2.2%보다 훨씬 낮아진 수준이다. WSJ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공급망 차질 등 악재가 겹친 탓"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들의 긴축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4조3천억 원 규모의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했다. 당초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서 내년 초에 새 반도체공장(M17)을 착공키로 했는데 연기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최근 세계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업황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이 이사회의 보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원화 약세로 원자잿값 등 수입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투자 비용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작년에 세웠던 투자계획은 당연히 바뀔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원재료 부분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원래 투자대로 하기에는 계획이 잘 안 맞는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결정의 연장선상인 것으로 해석됐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해외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1조7천억 원을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기로 한 배터리 공장의 착공 시기와 규모를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LG 에너지솔루션은 각종 비용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는데, 금리 인상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견·중소기업의 투자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산업계의 이런 움직임이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올해 하반기까지 미국 등 주요 국가의 금리 인상이 계속 예정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이 수그러질 가능성도 작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은 총 1천조 원이 넘는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현재로서는 기존 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손익계산서를 다시 따져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 위기가 지속되는 한 투자 계획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고용과 내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 경제 전반이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와 생산, 소비의 선순환을 끌어내는 것이 당면 과제로 떠오른 만큼 정부는 비상한 각오를 하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투자를 유도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방한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만나 세계 경제 동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양국 간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고 하니 구체적이고 내실 있는 대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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