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칩4 동맹' 주도에 中 시장 잃을라…속내 복잡한 반도체업계

입력 2022-07-20 06:01   수정 2022-08-11 14:05

美 '칩4 동맹' 주도에 中 시장 잃을라…속내 복잡한 반도체업계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기훈 기자 = 우리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이른바 '칩(Chip)4' 참여를 검토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칩4는 한국, 미국, 일본, 대만 4개국을 가리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러 회의체를 통해 (칩4 동맹에 대한) 한국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칩4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올해 3월 한국·일본·대만에 제안한 반도체 동맹으로, 우리 정부에는 "8월 말까지 칩4 동맹 참여 여부를 확정해 알려달라"고 마감 시한을 제시한 상태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칩4 동맹에 대해 복잡한 속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은 필수적이지만 자칫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잃을 수도 있어 섣불리 입장 표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 구조상 생산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고, 수요와 관련해선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다수의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자국 기술 통제로 외국의 반도체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최악의 경우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어서 정부와 업계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1천280억달러 가운데 대(對)중국 수출은 502억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각각 30%가 넘는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과 우리의 대중 수출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칩4 동맹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자유무역 원칙을 표방하면서 국가 역량을 남용해 과학기술과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 도구화, 무기화하고 협박 외교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관련 당사자 측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갖고 자신의 장기적인 이익과 공평하고 공정한 시장 원칙에 근거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정을 수호하는 데 도움 되는 일을 많이 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이 칩4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칩4 동맹은 결국 중국을 굉장히 압박할 가능성이 크고,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에 그 영향이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다만 "칩4 동맹이 있으면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들의 초격차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지 못해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우리가 칩4에 가입하지 않으면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수급받을 수 없다"면서 "삼성의 경우 낸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42%를 중국에서 생산하는데 장비가 없으면 생산을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는 중국 현지에 대부분 공급되는데 낸드와 D램을 공급하지 못하면 중국에서 IT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면서 "결국 중국 내 한국 공장이 안정적으로 업그레이된 장비를 받으려면 칩4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하고 중국과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은 좋든 싫든 상당히 큰 시장인 만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며 "가능한 한 경제적으로 계속해서 협력하고, 발전과 진전을 이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가 미국 반도체 산업에 520억달러(약 65조원) 규모의 보조금과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는 내용의 '반도체 산업 육성법안'을 조만간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은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경우 10년간 중국이나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물리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법안의 세부 내용과 그에 따른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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