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대표, 교황에 머리장식 선물…"잔혹 학대 사과하러 상황에 부적절"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캐나다 기숙학교의 원주민 아동 학대를 사과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사에서 원주민 대표가 건넨 깃털 머리 장식을 쓴 것을 두고 현지 원주민 사회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5일 캐나다 앨버타주 매스쿼치스의 옛 기숙학교 부지를 방문해 과거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이뤄진 원주민 아동 강제수용과 학대 등을 사과했다.
캐나다 원주민 대표로 나온 윌튼 리틀차일드는 이런 교황에게 전통 깃털 머리 장식을 씌워줬다.
이는 원주민 사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됐고, 교황도 원주민들의 손에 입을 맞추며 감사를 표했다.
교황이 평소 유지해온 복장 격식과 다소 동떨어진 인디언 머리 장식을 썼지만 교황청은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을 기관지 홈페이지에 올리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머리 장식을 선물한 캐나다 원주민 사회에서 과연 그렇게 한 것이 적절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9세기 캐나다 선교사들이 원주민 어린이들을 상대로 벌인 잔혹한 학대 행위를 사과한 쪽에 인디언 권위의 상징으로 통하는 머리 장식을 선물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머리 장식은 인디언 추장이나 전사들이 주로 착용하던 것으로 인디언들에겐 영광과 권위의 상징으로 통한다. 머리 장식에 꽂힌 깃털 하나하나에 영웅담 등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AP는 전했다.
일부 원주민들은 머리 장식은 교황이 사과하러 온 사안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카나와케 모호크족인 러시 디아보는 트위터에서 교황이 사과 메시지를 전달한 행사가 '축제'가 돼 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가톨릭교회와 캐나다가 마치 화해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잘못된 믿음을 만들어 냈다"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서부 아메리카 박물관 큐레이터인 조 '호스 캡처'(Horse Capture)는 트위터에 "이 장면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다. 모두 부정적인 말이다"라고 언급했다.
교황에게 머리 장식을 선물한 리틀차일드는 이와 같은 논란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자는 페이스북에서 "할아버지가 비난당하는 것을 보니 괴롭다"라며 "할아버지는 사과하기 위해 매스쿼치스까지 와준 교황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것"이라고 적었다.
캐나다 원주민 단체인 '퍼스트 네이션 연합회' 회장을 지낸 필 폰테인은 "리틀차일드는 규정을 따랐을 뿐, 큰 문제가 없다"고 감쌌다.
그는 "그런 선물을 줄 때는 관련 규정이 있다"며 "리틀차일드는 선물을 주기 전 원로들에게 가서 머리 장식을 선물하겠다며 허락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앞서 퍼스트 네이션 원로인 콘 크리어는 행사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머리 장식을 선물한 것은 부족장들이 교황을 우리 사회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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