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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대로를 가득 메운 인파가 손에 촛불을 하나씩 들고 행진합니다.
70년 전 세상을 떠난 전 영부인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1919∼1952)을 그리워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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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선 '에비타'(에바 페론의 애칭) 추모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에비타가 잠든 레콜레타 공원묘지엔 꽃을 든 추모객들이 줄지어 찾아왔고, 정부 청사 건물 외벽엔 에비타의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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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는 1946∼1955년, 1973∼1974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1895-1974)의 두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1946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부인을 지냈습니다.
마돈나 주연의 영화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그리고 이들 작품에 쓰였던 노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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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배우의 꿈을 이뤘던 에비타는 영부인이 된 후 자신처럼 가난한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정책을 폈습니다.
'빈자의 대변자'로 불리며 남편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리다 암에 걸려 33살의 이른 나이에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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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가 모두에게 추앙만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남편의 인기를 위해 나랏돈으로 자선 활동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파시스트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인 '페론주의'는 포퓰리즘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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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를 모델로 한 지폐가 전임 중도우파 정권에서 사라졌다가 페론주의 정당이 재집권한 후 올해 다시 등장한 것도 에비타의 유산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비타가 살아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 사람들까지 에비타의 사진을 들고 눈물짓는 모습은 그의 유산이 여전히 많은 아르헨티나인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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