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방노선으로 중국과 대립, 대만과 관계 강화
'전략적 자율성' 추구 EU는 어정쩡…러·중 협력 가속엔 우려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 국가 중 유일하게 리투아니아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지지를 표명했다고 EU 전문매체 EU옵서버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즈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펠로시 의장은 대만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다른 인사들도 아주 이른 시일 내에 그 문을 넘어 들어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리투아니아가 명시적으로 지지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어떤 국가, 어떤 세력, 그리고 어떤 개인도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고 조국 통일을 달성하려는 중국 정부와 인민의 확고한 결의와 위대한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1991년 옛소련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2004년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가입한 이후 친서방 노선을 추구해왔다.
인구 280만 명의 발트해 소국 리투아니아는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정책에 대항해 과감한 외교 행보에 나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리투아니아 현 정부는 대만을 지지하면서 중국에 맞서는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만 대표처'를 개설했다. 다른 유럽국가나 미국에서는 중국을 의식해 대만 대표부를 '타이베이 대표처' 등으로 우회해 호칭하지만, 리투아니아는 대만 대표처로 명명했다.
리투아니아는 오는 9월 대만에 대표사무소를 개관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정책을 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이 리투아니아 의회에서 통과됐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같은 달 중국과 동유럽 국가 간 경제협력체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리투아니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경제보복에 나섰으나 리투아니아는 중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서도 지난 6월 자국 영토를 경유해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 운송을 대폭 제한한 바 있다.
리투아니아가 용감하게 중국에 맞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EU는 중국과 관계에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자 EU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면서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왔다.
EU와 중국은 인권문제를 비롯해 대만 문제, 무역 갈등 등 긴장 요인에도 교역을 확대하고 나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모색했다.
중국도 미국의 압박과 대만 문제 등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을 중시해야 할 필요가 생겨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발 변수에 온기가 돌던 EU와 중국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개전 이후 미국과 EU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제재에 나서는 데 반해 중국은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제재 효과를 무력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EU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EU와 중국 간 복잡한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 싱크탱크 '루시'(RUSI)의 조너선 에얄 연구원은 "EU는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와 협력을 가속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는 미국의 관심이 멀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고 지적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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