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 상황 합리적 가격대"…1천700원대로 더 내려갈 듯
유류세 37% 유지시 8.9조 세수 손실…50% 하면 연간 15조원
(세종=연합뉴스) 박용주 곽민서 기자 =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범위를 50%로 확대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분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유가가 최근 고점 대비 20% 안팎 하락하면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정부가 현 상황에서 목표하는 수준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 데다 세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또한 상당하기 때문이다.
7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과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이 이달 중순께부터 시행된다.
법 개정안은 공포일부터 시행되는데 통상적인 절차로 미뤄보면 이번주 초 국무회의를 통과한 후 주 후반이나 다음 주 초께 공포될 예정이다.
법 개정안은 2024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휘발유, 경유 등에 대한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한도를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력세율까지 고려한 실제 유류세 인하 가능 범위가 현재 최대 37%에서 최대 55%까지 확대된다는 의미다. 최대치를 사용할 경우 유류세는 L당 최대 148원 추가로 내려갈 수 있다.
탄력세율은 시행령 사항이므로 정부가 상황 판단에 따라 국회의 동의 없이 시행할 수 있다. 이달 중순께부터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유류세를 50%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정부가 유류세 50% 인하 조처를 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주 발표될 추석민생안정대책 카드로 사용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국회는 이 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기획재정부가 국제유가, 물가·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탄력세율을 조정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이 법 개정안의 통과가 곧 유류세를 50% 인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활자로 명기한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지난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유류세 50% 인하는) 실제 물가 상황과 재정·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유가는 조금 하향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50% 탄력세율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제일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최근 국제유가와 물가 및 재정 상황 등 유류세 50% 인하 카드를 사용할 제반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6월 말께 배럴당 110달러 중반대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는 최근 90달러 안팎으로 근 20% 하락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가격은 지난주 리터(L) 당 1천881.9원까지 내려왔다.
주간 평균 휘발유 가격이 L당 1천800원대로 내려온 것은 지난 3월 둘째 주(1천861원)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국제유가 하락분이 국내에 전달되는 2∼3주간의 시차를 고려하면 당장 특이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1천700원선까지 하락이 예상된다.
이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보는 합리적인 수준의 유류 가격(1천800∼1천900원)보다 더 낮아진다는 의미다.
소비자물가의 경우 6%대(상승률)라는 높은 수준이 이어지고 있지만, 10월을 전후로 정점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한국은행의 관측이다.
재정 여건은 우호적이지 않다.
유류세 인하 폭 37%를 올해 연말까지 유지할 경우 유류세 인하를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말까지 세수 감소 폭이 8조9천억원에 달한다.
유류세 50% 인하 카드를 1년간 사용하면 세수 감소 폭은 15조원이나 된다.
유류세 인하가 유가가 오른 상황에서도 유류를 계속 소비하는 고소득층에 더 큰 혜택을 주는 정책이라는 점도 정책당국이 유류세 인하를 탐탁지 않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물가 안정 차원에서 예상보다 할당관세 카드를 많이 쓴 점, 부동산시장이 냉각기로 들어서면서 양도소득세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감소하는 점도 더는 감세 카드를 쉽게 쓰기 어려운 이유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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