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아야 하지만…한은, 경기침체 우려에 '베이비스텝'

입력 2022-08-25 10:00   수정 2022-08-25 15:08

물가 잡아야 하지만…한은, 경기침체 우려에 '베이비스텝'
전문가들 "연속 빅스텝 밟기엔 수출·소비 등 경기 불안"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민선희 김유아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2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더 높였다. 4월, 5월, 7월에 이어 이날까지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린 것으로, 네 차례 연속 인상은 사상 처음이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넘어선데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으로 외국인 자금 유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금통위로서는 이례적 줄인상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금통위는 경기 타격 등을 고려해 인상 폭을 지난달 빅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에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줄였다.


◇ 외환위기 이후 최대 인플레·금융위기 이후 최고 환율에 '인상 불가피'
금통위가 이날 다시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준까지 커진데다 아직 물가가 정점을 지났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108.74)는 외식·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6.3% 뛰었는데, 이는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향후 1년의 예상 물가 상승률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이달 4.3%로 역대 최고였던 7월(4.7%)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4%대를 웃돌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통위 회의에 앞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약간 진정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하반기까지 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은이 물가 대응 차원에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가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 상태도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두 달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뒤 미국의 기준금리(2.25∼2.50%)는 한국(2.25%)보다 높아졌다.
한은으로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격차를 좁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 환율 변화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등의 위험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처지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지난 23일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1,345.5원까지 뛰는 등 최근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면서, 한은 입장에서는 환율 방어 차원에서라도 기준금리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급격한 원화 약세를 방치하면 자금 유출 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더 올라 물가 오름세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빅 스텝을 결정하면서 상당수 금통위원도 비슷한 근거로 이미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한 위원은 "물가와 고용 상황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이유는 충분하며, 실물경제 활동과 인플레이션 전망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과정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위원도 "향후 물가·경기 전망, 금융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위원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폭이 예상보다 커지고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자본유출 규모가 단기간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따라서 내외 금리차가 우려할 만큼 확대되지 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경기침체 가능성·미국 긴축 속도 조절 등 고려해 베이비스텝"
하지만 금통위는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빅 스텝을 밟지는 않았다. 물가뿐 아니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 때문에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만, 한은으로서도 0.5%포인트를 올리기에는 경기 침체 가능성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최근 경기 침체 가능성 때문에 연준이 내년 중반께 통화 긴축 기조를 멈추거나 완화 쪽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이 한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금리 역전에 대해서도 "역전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고, 우리가 지금 빅 스텝을 다시 한번 밟는다고 역전 상태가 완전히 해소되기도 어렵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빅 스텝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연준이 9월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이 아니라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 정도로 속도를 조절할 것 같다"며 "물가 상승세도 미국에서 다소 꺾였고, 국제 유가나 원자재 가격도 조금 떨어진 만큼 굳이 한은 금통위가 빅 스텝을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좋았지만, 소비만 기대 이상이었을 뿐 수출이 많이 둔화했고, 이후로도 계속 여러 나라의 경기 침체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한은도 금리를 계속 크게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 역시 "소비, 투자, 수출 중 하나라도 가시적으로 살아났다는 증거가 지금 없기 때문에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것"이라며 "수출은 세계 경제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늘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 효과가 소비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경기 침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shk999@yna.co.kr, ssun@yna.co.kr, ku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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