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구팀 "방어 단백질 정보 제어로 면역력 강한 다수확 작물 개발 기대"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식물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의 공격을 받을 때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 등 일상적인 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병원체와 싸우는데 필요한 방어 단백질을 만드는 전투태세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을 밝혀졌다.
미국 듀크대 신녠 둥 교수팀은 29일 과학저널 셀(Cell)에서 식물이 이런 방어 단백질을 생산하는 전시체제로 재프로그래밍하는 주요 구성 요소들을 규명하고 이를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식물의 세포는 필요에 따라 많은 종류의 단백질을 생산하는 일종의 화학 공장이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병원체 공격을 받으면 이를 감지한 세포에서 성장 등을 위한 단백질 생산을 중단하고 질병과 싸우는 데 필요한 방어 단백질을 생산한다.
하지만 병원체와 싸우는 데 필요한 단백질이 만들면 성장에 필요한 단백질 생산이 중단돼 작물 생산량은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매년 작물 생산량의 약 15%가 세균과 곰팡이 질환으로 손실돼 세계 경제에 2천200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혈류를 통해 공격받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면역세포가 없어 세포 하나하나가 스스로 병원체와 싸워야 한다. 즉 각각의 세포가 '전투 모드'로 전환해 방어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식물은 공격을 받을 때 우선순위가 성장에서 방어로 바뀌면서 일반 단백질 생산을 억제하면서 질병과 싸우는 데 필요한 새 단백질을 합성하기 시작하며 이런 변화는 2∼3시간 안에 빠르게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백질은 핵 안의 DNA에 들어 있는 단백질 정보가 메신저 RNA(mRNA)로 전사되고, 세포질에 있는 리보솜이라는 소기관이 이 mRNA 정보를 해석해 단백질을 합성한다.
둥 교수팀은 2017년 연구에서 식물이 감염됐을 때 특정 mRNA들이 다른 mRNA보다 더 빨리 번역돼 단백질로 합성되며, 빨리 번역되는 mRNA에는 RNA 가닥의 맨 앞에 염기 아데닌(A)과 구아닌(G)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이 공통으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식물이 병원체의 공격을 받을 때 mRNA의 A-G 반복 영역이 세포 내 다른 구조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해 세포의 '전시'(wartime) 단백질 생산 체제를 활성화하는지 밝혀냈다.
식물이 병원체의 공격을 탐지하면 리보솜이 먼저 번역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A-G 반복 영역이 제거되면서 세포는 '평시' 단백질의 생산을 멈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리보솜은 A-G 반복 영역을 우회해 mRNA를 해독하면서 방어 단백질을 합성하기 시작한다.
둥 교수는 식물이 감염과 싸우는 과정은 자원 활용 균형잡기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방어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면 성장에 필요한 광합성에 사용할 자원을 줄어들기 때문에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너무 많은 방어 단백질이 만들어지면 성장이 저해되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물이 방어와 성장 간 균형을 이루는 방식을 이해하면 수확량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 질병에는 강한 작물을 만드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연구팀이 실험용 식물인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의 유전자를 조작, 질병 저항성을 높인 결과 식물 면역력은 강해졌으나 성장은 저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식물체에서 방어 단백질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을 통제하자 성장이 다시 정상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둥 교수는 mRNA의 A-G 반복 영역은 애기장대 같은 식물뿐 아니라 초파리, 쥐, 인간 등 동물에서도 발견된다"며 "이 영역은 동식물 모두에서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데 더 광범위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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