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확인서 퇴짜 맞은 뒤 브로커 통해 재검…피해 사례 속출
한국대사관, 민간항공청에 강력 항의…"즉각 시정 요구"
(하노이=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베트남 관광산업의 최대 고객인 한국인들이 현지 항공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은 뒤 뒷돈을 주고 재검을 받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입국 전에 출발일 기준 24시간 전 이내로 신속 항원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본국의 규정을 악용한 사례들인 만큼 한국 정부 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현지 항공업계 관계자 및 제보자들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11시께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 저가항공사인 비엣젯 여객기(VJ 960편)에 탑승하려던 이모씨(50) 등 일행 3명은 수속 카운터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들은 당일 오전 숙소인 하노이 롯데호텔 부근의 대형 병원에서 받은 신속 항원검사 음성 확인서를 카운터에 제출했지만 담당 직원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당시 이 직원은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검사 방법"이라고 이유를 대면서 "내일 출발하는 여객기를 다시 알아보라"고 했다.
이에 이씨 일행은 하노이 중심가의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를 받고 수령한 음성 확인서라면서 강하게 항의했지만 해당 직원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이들은 체념한 채 항공사 직원이 알려준대로 발권 오피스로 갔다가 갑자기 접근해온 현지인 브로커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브로커는 "돈을 좀 주면 음성확인서를 받아서 예정대로 여객기에 탑승할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1인당 검사비조로 100만동에 택시비 100만동 등 총 400만동(23만원)을 요구했다.
당초 검사를 받았던 하노이 시내 패밀리메디컬 병원에 낸 비용은 1인당 35만동에 불과했다.
또 대한항공도 이 병원에서 발급한 음성확인서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조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브로커에 이끌려 택시를 타고 다른 검사소로 향했다.
결국 이들은 이곳에서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서를 받은 뒤 공항으로 돌아와 여객기에 탑승했다.
그러나 추후 확인 결과 1인당 검사 비용은 15만동에 불과했고 브로커는 자신의 몫으로 85만동씩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비엣젯 측은 "음성 확인서에 검사 방법과 관련해 '판비오'(Panbio)라는 생소한 단어가 있어서 인천공항 검역소에 확인한 결과 '인정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어서 이같이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인천공항 검염소 측의 설명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인천공항 검역소 관계자는 "당일 비엣젯 측에서 판비오 검사법 인정 여부를 물어와서 '의사 감독 하에 하면 가능하니 승객에게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항공사 측은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비엣젯 수속 카운터 앞에서는 이씨 등 피해자들이 대기중이었고 음성 확인서에는 담당 의사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무래도 비엣젯이 현지의 상황을 잘 알 거라고 판단해 '그렇다면 인정하기 어려울거 같다'고 보수적으로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항공사 직원과 브로커 간에 모종의 연계가 있는지 여부다.
이씨는 "발권 오피스에 가자마자 브로커가 접근한 걸로 봐서는 항공사 직원과 브로커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에 음성 확인서에 문제가 있었다면 수속 카운터에서 다른 검사소를 알려주면 되는데 그러지 않은걸로 봐서는 의도적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는 별개로 이날 오후 한국인 커플도 베트남어로 된 음성 확인서를 들고 왔다가 한국어와 영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시 퇴짜를 맞은 뒤 브로커를 통해 재검을 받고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인천공항 검역소 관계자는 "검사방법과 결과가 영어로 기재됐으면 베트남어로 된 확인서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월 26일에도 한국인 A씨 가족이 하노이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려던 중 현지 브로커로부터 사기 피해를 당했다.
A씨 가족은 귀국 전날 호텔 인근의 종합병원에서 국내 입국에 필요한 전문가용 항원검사(AG) 음성확인서를 받았으나 공항 체크인 과정에서 비엣젯 직원으로부터 "음성확인서가 영문이 아니라서 입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이들도 현지인 브로커에 1인당 170만동을 주고 병원에서 음성 확인서를 받은 뒤에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에 A씨 가족이 받은 확인서는 검사방법 항목이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이처럼 베트남 공항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출국 수속 절차를 밟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자 한국대사관도 대응에 나섰다.
한국대사관은 최근 베트남 민간항공청(CAAV)에 공문을 보내 "일부 베트남 측 항공사가 우리 정부의 지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사례가 다수 접수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검사 및 음성확인서 발급에 지나친 비용을 요구하는 사례에 대한 신고도 다수 들어왔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CAAV는 "각 항공사에 한국의 입국 지침을 재차 통보했고 주의를 촉구했다"고 대사관 측에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의 이같은 대응에도 불구하고 피해 사례들이 끊이지 않아 더욱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현지 최대 여행객인 한국인들을 호구로 여기지 않고서는 이같은 짓을 할 수 없다"면서 "일단 공항 카운터 부근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에 대한 단속이 시급하며 향후 수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은 올해 들어 베트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입국 제한을 푼 뒤 현지 관광업계의 최대 고객으로 부상했다.
베트남 통계청(GSO)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현지에 들어온 한국인 여행객은 19만6천여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외국인 여행객의 20%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 다음으로 여행객들을 많이 보낸 나라는 미국(10만2천명)과 캄보디아(6만명) 순으로 나타났다.
bum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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