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환 기자 = 한국 정부가 미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만 혜택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배신'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익명의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2일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의 잇따른 대규모 미국 투자 발표 뒤에 미국에서 이런 법이 나온 것은 불공평한 처사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이번 사안에 대한 협력을 미국이 제시한 경제적 안건들과 관련된 다른 사안들과 결부시킬지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조치가 배제된 것은 아니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 같은 구상에서 한국이 핵심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플레 감축법을 둘러싼 한미 간 마찰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제정된 인플레 감축법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천500달러(약 1천22만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아직 현지 전기차 생산시설이 없는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는 수혜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전성훈 국민대 겸임교수도 한국이 인플레 감축법을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것' 같은 행위로 여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발표한 뒤 한국 정부와 국민은 미국 시장 접근 면에서 비슷한 규모의 경제적 혜택을 미국으로부터 기대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에 총 276억달러(약 37조6천억원)를 투자했으며, 현대차는 조지아주에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짓는 데 55억달러(약 7조5천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블룸버그는 소개했다.
이 사안을 잘 아는 다른 소식통은 윤 대통령이 지난달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만나지 않은 것은 '치명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만약 둘의 만남이 이뤄졌다면 인플레 감축법 의회 통과 이전에 관련 규정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플레 감축법과 관련해 한국 정부 합동대표단과 국회 대표단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협의를 벌였으며, 조만간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방미해 고위급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달 예정된 미국 방문 기간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성명을 통해 한국의 우려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한 협상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향후 몇 달 안에 관련 규정 제정 절차를 시작하면서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플레 감축법 관련 핵심 상임위인 미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브렌던 보일 하원의원(민주당·펜실베이니아)은 세입위가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이 사안을 다룰지 의구심을 나타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보일 의원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신경 쓰고 있다"면서도 다른 할 일들을 고려하면 중간선거 직전이나 직후에 세입위가 이 사안에 뛰어든다면 자신은 좀 놀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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