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여왕 서거] 애도 뒤 한편에선 '피비린내 식민주의' 비판

입력 2022-09-11 13:18   수정 2022-09-13 09:11

[英여왕 서거] 애도 뒤 한편에선 '피비린내 식민주의' 비판
미국서 논쟁 가열…"대량학살 제국의 군주" 공격까지
"여왕, 군주제 폭력 희석"…개인·가문 따로보자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별세를 계기로 영국 군주제의 폭력적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학자, 비평가, 전직 외교관들은 영국이 과거 아프리카, 아시아, 카리브해 국가를 식민지로 착취해 풍요를 누려왔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마야 자사노프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영국 군주제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위장 간판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자사노프 교수는 여왕의 통치 시기이던 1950년대에 케냐에서 일어난 독립투쟁인 '마우마우 봉기'를 성찰할 사례로 지적했다.
1952년 케냐 방문 중에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는 여왕으로 즉위한 지 몇 달 만에 케냐의 영국 식민지 당국은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단체 마우마우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케냐인이 고문과 강간, 거세 피해를 당했다.
케냐 인권위원회는 마우마우 봉기 기간에 9만 명이 살해당하거나 불구가 되고 16만 명이 구금된 것으로 추산했다.
자사노프 교수는 "여왕의 존재(이미지)는 이러한 피비린내나는 영국 제국주의의 역사를 희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연방의 수장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존재는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격렬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국 전통주의의 간판이었다"고 말했다.
우주 안야 미국 카네기 멜런대 부교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당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여왕을 "도둑질과 강간을 일삼는 대량 학살 제국의 최고 군주"라고 비난했다.

트위터는 자사의 규정을 위반했다며 이 게시물을 삭제했다.
안야 부교수가 몸담은 카네기 멜런대는 성명을 내고 안야 부교수의 글은 대학의 의견과 다르며 해당 게시글의 내용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영국의 군주제를 오늘날 국가 간 불평등 문제와 결부해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식민지 이후 역사를 연구하는 프리얌바다 고팔 교수는 미국 독립 뉴스 방송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군주제는 극심한 불평등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수가 권력, 특권, 부를 장악하고 남은 사람은 이들 소수를 숭배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완전히 정상이라고 믿도록 했다"며 영국 군주제가 지원한 제국주의의 폐해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에도 영국 대신 미국처럼 권력이 집중된 강대국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개인과 군주로서 그의 역할을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공공외교·공보담당 차관을 지낸 리처드 스텐겔은 MSNBC 방송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비길 데 없이 성실한 복무는 칭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텐겔 전 차관은 "여왕은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국가 원수로 군림했으며 그 가문의 식민주의 유산은 세계 많은 곳에 끔찍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자메이카 출신인 멀리사 머리 뉴욕대 법대 교수는 같은 날 트위터를 통해 "여왕의 별세로 식민지주의, 배상,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논쟁이 가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dind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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