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흑자 행진 14년만에 멈출듯…올해 역대 최대 적자 우려
원화가치 하락·증시 불안 자극…경제 성장률도 끌어내릴 듯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우리나라 무역 전선에 초비상이 걸렸다.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이 늘면서 올해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경제 버팀목인 수출마저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화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무역수지 악화는 외환·증권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발 에너지 수급 불안, 미국을 필두로 각국의 정책금리 인상발 경기 침체 우려 등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우리 경제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 13년 연속 무역흑자 기록했지만…올해는 적자에 '허덕'
한국은 그동안 '무역 강국'의 입지를 강화해왔지만 올해는 대외 충격에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13년 연속 무역흑자 행진이 올해는 멈출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지난해 무역액(수출+수입)이 1조 달러를 넘은 국가는 10개국으로 이 중 우리나라는 전년보다 한 계단 오른 8위(1조2천595억 달러)를 차지했다. 무역흑자는 293억 달러였다.
하지만 올해는 무역흑자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를 냈다. 이달 1~20일 무역수지(통관 기준 잠정치)는 41억 달러 적자로 6개월 연속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올해 들어 누적 무역적자는 292억 달러에 이른다.
추석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의 영향도 있지만 이달 들어 수출액은 8.7% 감소해 수출 전선도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은 지난달까지 석 달 연속 줄었는데 9월 들어서도 14.0% 감소했다.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 5~8월 넉 달 연속 적자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달 6~15일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무역수지 및 환율 전망'을 조사한 결과 올해 연간 무역적자가 281억7천만 달러로 전망됐다.
이런 전망이 맞는다면 연간 무역적자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때(-133억 달러)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206억 달러)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를 기록하게 된다.
세계 경기 둔화가 가속하면 우리나라 연간 무역적자가 300억 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국제 교역 증가율을 올해 4.1%, 내년 3.2%로 예상했다.
이는 3개월 사이에 각각 0.9%포인트, 1.2%포인트 하향 조정된 것으로, 그 이후 세계 경제 전망이 더 어두워진 점을 고려할 때 국제 교역이 예상보다 크게 둔화해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 무역수지 악화에 외환시장·증시 '불안', 경제 성장 '발목'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당분간 적자 행진을 계속하며 경제 부담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역수지 악화가 약세를 보이는 원화 가치(원/달러 환율 상승)를 추가로 떨어뜨리고 이는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무역적자 규모를 늘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 건전성 지표 가운데 하나인 경상수지 적자마저 우려되고 있다.
무역적자는 외환시장뿐 아니라 증시에도 악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무역수지 감소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환차손 우려로 한국 증시의 투자 매력이 낮아져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압력이 커진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월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다음 달에는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순매도할 확률이 무역흑자 때보다 평균 28.3%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9월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확률을 75.6%로 제시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수출 호재'라는 공식은 옛말이 됐다. 원화뿐만 아니라 다른 수출 경쟁국의 통화가치도 함께 떨어져 환율 효과를 누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출 기업 300곳을 조사한 결과 64.7%가 올해 하반기 수출이 상반기보다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된 이유로 중국 등 주요 수출 대상국의 수요 감소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다.
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이 둔화하면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세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7%에 그친 데는 무역 부문의 영향이 컸다.
2분기 경제성장률에 대한 내수의 기여도는 1.7%포인트를 기록한 반면 순수출(수출-수입)은 성장률을 1.0%포인트 끌어내렸다. 3분기 이후 교역 실적을 볼 때 하반기에도 경제 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대학 학장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커서 무역수지 악화의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 해외 수요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낮추고 장기적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은 환율 안정 등 금융시장 불안 차단, 규제 완화, 세제 지원, 해외자원 개발 등을 요구하고 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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