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친푸틴 세력과 손잡은 극우정부…"대러정책 변화 가능성도"
"멜로니, '우크라 지지' 유지해 국제사회서 '정통성' 구할 듯"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극우 성향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가 주축이 된 이탈리아 극우 정부가 현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우크라이나 계속 도울지에 국제 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역임해 국제사회의 신망이 두터운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유럽연합(EU)의 쌍두마차인 독일, 프랑스와 함께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왔다.
25일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연합이 선거 운동 기간 이민정책부터 코로나 백신 규제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정책과 차별화를 꾀해온 만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책에도 입장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일각의 예상이라고 NYT는 전했다.
사실,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자리를 예약한 멜로니 대표의 경우 그동안 '여자 무솔리니'로 불릴 정도로 이민정책, 가족정책 등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만큼은 그동안 서방 주요국과 보조를 맞춰 왔다.
그는 러시아의 명분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자위권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 의사를 밝혀왔고, 최근의 인터뷰에서도 이탈리아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멜로니 대표와 손을 잡고 우파 연합 정부를 구성할 극우정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를 이끌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경우 이탈리아에서 대표적인 친(親)푸틴, 친러시아 인사인 터라 대러시아 정책에 있어 새 정부의 기류 변화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 살비니 상원의원은 총선을 코앞에 둔 이달 초 한 경제포럼에서 대러시아 제재가 러시아보다 유럽과 이탈리아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제재 해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해온 인사다.
푸틴의 20년 절친으로 휴가를 함께 보낼 만큼 돈독한 사이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총선 직전 이탈리아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상황을 놓고 러시아 국민, 정당, 장관들에게 침공을 강요당했고, 이로 인해 '특별 작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만일 이탈리아 새 정부가 유럽 주변국들과의 연대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면, 러시아산 에너지가 끊긴 채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유럽의 단결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런 전망을 의식한 듯 이탈리아 선거 결과에 대해 "우리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더 건설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떤 정치 세력이라도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며 은근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러시아가 머지 않은 시점에 이탈리아의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제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예상이라고 NYT는 짚었다.
멜로니 대표가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대해 신뢰할 만한 입장을 견지해 왔고, 이번 선거에서 우파 연합의 두 축인 동맹과 전진이탈리아가 각각 한자릿수의 저조한 득표를 해 살비니 대표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주장이 먹힐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예상을 밑도는 성적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살비니 대표는 좀 더 온건한 당내 인사에게 당 대표직을 물려줘야 한다는 압박까지 커지고 있는 터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없는 처지다.
비록 멜로니 대표가 선거 운동 기간에 EU에 과거보다 적대감을 덜 드러내고,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나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 인사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와 거리를 둔 것이 중도표를 겨냥한 위장술이라는 의혹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의 일관된 지지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망했다.
그가 총선 승리를 선언하는 연설에도 이탈리아와 EU가 당면한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면서 "상황이 어렵다. 책임감의 시간"이라고 언급해 EU를 분열시키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고 NYT는 짚었다.
멜로니 대표가 노련한 정치인인 만큼, 러시아 제재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유럽의 단결을 해쳐 EU의 지원금 삭감 처분을 받은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길을 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밀라노에 있는 국제정치연구소의 러시아·중앙아시아 연구 책임자인 알도 페라리는 "멜로니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국제사회 지도자들, 특히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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