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보도…'감산은 러시아 편들기' 美로비에도 '탈미국' 노선 견지
"바이든 카슈끄지 암살 관련 개인적 대화 공개에 왕세자 분노"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감산 결정을 늦춰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묵살하고 예상 이상의 대규모 감산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산은 러시아 편들기'라는 등의 미국의 압박 작전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비롯한 사우디 실세들이 분노를 표했고, 그 결과 미국도 사우디와의 관계 재검토를 시사하는 등 양국 관계가 극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의 하루 200만 배럴의 감산 결정 며칠 전 미국 정부 관리들은 사우디와 주요 산유국 카운터파트들에 전화를 돌려 '다음 회의로 감산 결정을 미뤄달라'는 긴급 요청을 전달했다.
그러나 사우디 등으로부터 '결코 안 된다(No)'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들이 WSJ에 밝혔다.
백악관 관리들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여러 번 통화하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사우디 재무장관과 대화하는 등 집중적인 로비전을 펼쳤으나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가 하락을 우려하는 사우디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미국은 브렌트유가 배럴당 75달러까지 하락할 경우 자국 전략비축유를 채워넣기 위한 대규모 원유 구매까지 약속했으나, 이 제안 또한 사우디가 거부했다고 한다.
미 정부 관리들은 사우디 지도층에 '감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들겠다는 분명한 선택'이라고도 경고했으나 이런 조치는 오히려 미-사우디 관계의 추가 악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직접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으나, 무함마드 왕세자의 '탈미국' 외교 노선을 바꾸는 데 거의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관한 사우디 왕가와의 개인적 대화 내용을 공개한 데 대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분노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예멘 전쟁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비판적 시각과 이란 핵합의 복원 노력을 근거로 참모진에 '바이든 행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언급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하루 50만 배럴 증산을 계획하던 사우디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후 무함마드 왕세자의 지시에 따라 증산 폭을 하루 10만 배럴로 대폭 낮췄다고 사우디 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이에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안보 특사가 사우디 에너지장관인 압둘라지즈 빈 살만 왕자에게 '약속을 어겼다'는 항의 메일을 보내자, 격분한 압둘라지즈 왕자가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석유 정책'을 구축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위한 '정치적 책략' 차원에서 감산 연기를 압박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내부적으로는 사우디의 동맹들조차 대규모 감산이 경기침체를 촉발해 오히려 원유 수요가 약화할 것이라며 사우디의 감산 추진에 반발했으나, OPEC+의 단합을 유지하기 위해 결국 감산 결정에 동의했다.
이러한 사우디의 행동에 바이든 행정부는 이달 열리는 사우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 참석 취소도 검토 중이라고 미 정부 관리들이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관은 이날 CNN 방송에 출연해 사우디와의 관계 재검토를 시사했고, 미 의회에서는 사우디에 대한 1억 달러 상당의 무기 판매 등 협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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