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진압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항의…집안에서, 운전 중에도 동참
주도자 없이 산발적으로 집결…"상당 기간 지속 가능성"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촉발된 이란 내 시위가 17일(현지시간) 한 달을 맞는다.
엄격한 사회 통제가 이뤄지는 이란에서 민중 시위가 이처럼 길게 지속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특히 젊은 여성이 시위의 주축이 됐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첫 시위는 아미니의 고향인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 도시 사케즈에서 아마니 사망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시작됐다.
이날 열린 아미니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했고, 일부 주민들이 동참하면서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모였다.
아미니의 사연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중부 도시 이스파한, 남부 도시 시라즈로 시위가 확산했다. 18일부터는 수도 테헤란에서도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아미니 의문사 사건을 최초 보도한 이란 기자 닐루파 하메디는 당국에 체포됐다.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시위 촉발 후 약 한 달간 언론인 최소 28명이 체포된 것으로 파악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달 20일 유족들에게 대표단을 보내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으나, 시위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국경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보안군 간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첫 사망자는 아미니의 출신지이자 이라크와 국경을 접한 서부 쿠르디스탄주에서 나왔다.
현지 관영 언론은 시위대가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경찰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에는 남동부 시스탄-바-발루치스탄주(州)에서 시위대와 보안군의 교전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국영 IRNA 통신은 교전 과정에서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 민병대 대원 5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 휴먼 라이츠(IHR)는 이 지역에서만 41명이 보안군에 의해 살해됐다고 집계했다. 이 단체는 지난 13일 기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185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히잡 시위'는 '테헤하쉬터디'(20대를 일컫는 이란어)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됐다.
이란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테헤란대와 샤리프 공과대가 시위의 중심이 됐다.
현지 신문은 체포된 시위대 중 10ㆍ20대가 90%를 차지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시위는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과거 대규모 인파가 주요 광장에 모였던 것과는 달리 중소규모로 산발적인 결집이 이뤄졌다.
출퇴근길 거리는 물론 주택가 작은 골목에서 몇몇이 모여 손뼉을 치며 구호를 외치는 동참자가 많았다.
운전하면서 경적을 울리고, 집안에서 창문 밖으로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는 매일 밤 계속됐다.
현지 언론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히잡 반대 시위가 올해처럼 광범위하고 긴 기간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2019년 정부의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인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나, 정부가 주모자들을 대거 체포하면서 시위는 약 2주 만에 잦아들었다. 인권단체는 당시 수백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 2009년에는 대통령 선거 때 부정이 자행됐다고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 동안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익명을 요구한 중동 정치 전문가는 "과거 이란 내 시위는 당국이 주동자를 체포하면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리더 없이 산발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시위가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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