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통일교·국회의원 접점 확인에 "국민의 정치 신뢰 훼손…사과해야"
소비자청 전문가 검토보고서 "해산명령 청구 염두에 두고 질문권 행사해야"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하 가정연합) 문제가 확산하자 조사에 착수해 종교법인격이 박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17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나가오카 게이코(永岡桂子) 문부과학상에게 '종교법인법'에 규정된 '질문권' 행사에 의한 조사를 시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현지 방송 NHK가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 이후 종교법인법 개정을 통해 마련한 질문권을 종교단체를 대상으로 행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질문권을 활용하면 문부과학성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법령 위반이 의심되는 종교법인의 임원에게 사업과 업무에 관해 보고를 요구하고 질문할 수 있다.
조사 이후 종교 단체가 현저하게 공공복지에 해를 끼쳤다고 인정되는 행위 등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법원이 소관 관청이나 검찰의 청구를 받아 가정연합의 종교법인격을 박탈하는 해산을 명할 수도 있다.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은 그동안 "조사 결과에 따라 해산명령 청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일본 정부가 지난달 5일 개설한 전화 상담창구에 지난달 30일까지 1천700건 이상의 상담이 접수된 것 등을 조사 결정 이유로 들었다.
그는 "곤궁이나 가정의 붕괴가 생긴 피해자가 다수"라며 "구제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는 것을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교단 측과 국회의원의 접점이 잇따라 확인된 데 대해서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며 "솔직히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민당 소속 의원 379명 중 절반에 가까운 180명이 가정연합과 접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평범한 물건을 고액에 판매하는 가정연합의 '영감상법'(靈感商法)과 고액헌금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온 소비자청의 전문가 회의는 이날 검토회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연합에 대해 "법령을 위반해 현저히 공공복지를 해친다고 인정되는 행위를 했거나 종교단체의 목적을 현저히 벗어난 행위를 한 종교법인에 해당한다는 의심이 든다"며 "해산명령 청구도 염두에 두고 종교법인법에 근거해 질문권 등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면서 피해 구제를 위한 법률 정비도 요구했다.
문화청은 질문권 행사 기준 등을 정리하기 위해 종교와 법률 전문가들이 참가한 전문가 회의를 설치해 25일부터 검토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기부해 가정이 엉망이 됐다"며 범행 동기로 아베 전 총리와 가정연합의 유착 의혹을 거론하면서 가정연합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베 전 총리 살해범이 범행 동기로 언급한 가정연합의 조사와 해산명령 청구에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가정연합과 정치권 유착 논란이 지속되고, 일반인의 가정연합 관련 피해 신고도 늘어나면서 태도를 전환했다.
가정연합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최근 20∼30%대까지 떨어졌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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