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양적완화 시대 끝나 정치인 정책운용폭 좁아져"
정부 '시장의 힘' 확인…'잘못된 정책' 꺼내들라 살얼음판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역대 최단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임한 것은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 시대에 정치인들이 처한 험난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각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인플레이션과 초저금리 덕분에 더 많은 부채를 쌓고 더 많이 지출하면서도 시장 불안을 야기하지 않을 수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고 정치인들의 운신 폭이 매우 좁아졌다는 것이다.
WSJ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부 부채 부담이 이미 크고 금리 인상으로 차입 비용이 더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이 통화긴축 정책을 펴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상환 방법 고민 없이 차입을 늘리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을 그런 상황에 부닥친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영국은 부채가 경제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팬데믹 전 80% 정도에서 현재는 100% 수준으로 높아졌다.
조너선 포티스 킹스칼리지 런던 경제학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경제성장을 위한 감세 정책을 꺼낸 것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정책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감세와 함께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부터 가정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억 파운드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재원을 지출 삭감이 아니라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기로 한 것은 투자자들의 불안에 높이기에 충분했다.
시장은 극렬하게 반응했다.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를 매도하면서 채권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파운드화 가치는 며칠 만에 기록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트러스 총리가 감세정책을 철회하고 콰텡 재무장관이 물러나면서 채권 시장과 파운드화가 다시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트러스 총리의 인기와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 사임을 피할 수 없었다.
금융서비스업체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의 수잔나 스트리터 수석분석가는 "트러스 총리 사임은 보수당뿐 아니라 각국 정부에 시장의 힘에 대한 교훈을 준다"며 "시장은 맘에 들지 않으면 국채를 내던져 차입비용(금리)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가 다시 시장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후임 총리가 상황을 단순히 감세정책 이전으로 돌리는 것을 넘어 중기 재정 계획에서 긴축재정 정책을 폄으로써 정부의 재정긴축 의지를 시장에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WSJ은 또 트러스 총리 사임 사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한 천연가스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지출 프로그램에 신중해야 한다는 교육을 준다고 전했다.
덴마크 단스케방크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내년에 가게와 기업에 대한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을 위해 3천850억 유로(약 539조원)의 부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유럽중앙은행(ECB)과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오래된 양적완화 대신 양적긴축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사 M&GH 인베스트먼트의 짐 리비스 최고투자책임자는 "각국 정부는 오랫동안 양적완화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제 시장은 양적완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지출계획에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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