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외부에 공공의 적이 있으면 내부는 똘똘 뭉치기 마련인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선다는 프랑스와 독일이 지난 몇 주간 보여준 모습은 그 반대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 26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나 3시간이나 대화하고도 기자회견은커녕 공동 성명도 발표하지 않은 게 정점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 관계자들은 업무 오찬이 끝나고 나서 익명으로 "건설적이었다"라거나,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지만, 통상적으로 뒤따라야 할 기자회견을 생략한 것은 양측의 대화가 정말 건설적이고 성공적이었을지 의문을 품게 했다.
독일에서 취재진을 대동하고 엘리제궁에 도착한 숄츠 총리 측에서는 애초 양국 정상이 회담 후 카메라 앞에 설 것이라고 안내했으나 엘리제궁이 이를 취소했다는 언론 보도는 이러한 의구심에 무게를 실어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일반적으로 자국을 방문한 타국 정상의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것은 상대를 질책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정치 전술"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이 숄츠 총리에게 모욕을 안겼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최근 들어 에너지 정책, 외교·국방 정책 등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 왔는데, 이는 양국 간 물밑 접촉이 원활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숄츠 총리가 지난 9월 치솟는 에너지 가격이 가계와 기업에 주는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2천억유로(약 285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할 때 마크롱 대통령에게 언질을 주지 않은 게 대표적인 일화다.
프랑스는 며칠 뒤 이러한 대규모 지원책은 재정이 독일만큼 넉넉하지 않은 다른 EU 회원국에 불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 EU 단일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가 내는 엇박자가 점점 잦아지자 프랑스에서는 숄츠 총리의 전임자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이 함께 일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분위기가 읽힌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하루도 빠짐없이 문자를 주고받았다. 숄츠와 마크롱은 매일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는 데도 애를 써야 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의 오찬이 있던 날 프랑스 정부 관계자가 익명으로 기자들에게 했다는 이 말은 프랑스와 독일 정상이 전처럼 좋은 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르켈 전 총리가 떠난 자리가 크다는 것을 느끼는 건 마크롱 대통령만은 아닐 테다. 숄츠 총리가 국제무대에서 보여주는 행보가 독일의 위상에 맞지 않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유럽의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숄츠 총리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서 개입을 최소화한다"며 "유럽에서 독일의 책임을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고 일간 르몽드에 밝혔다.
익명의 한 외교관은 "숄츠는 독일이 외국에서 보이는 독일의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며 숄츠 총리의 주요 관심사는 독일 국내 현안뿐이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언론이 전한 숄츠 총리의 평판이 사실에 가깝다면 프랑스와 함께 EU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탱해온 독일의 외교적 접근법에 변화가 있기를 희망해본다.
그렇지 못한다면 EU는 계속 분열한 채로 남아 8개월 넘게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 웃게 되지 않을까 싶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