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누군가 죽는다'…정치인 향한 폭력에 여야 의원 우려
펠로시 '악마화'한 공화당 선거 전략도 문제로 지적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집을 습격해 남편 폴 펠로시를 폭행한 40대 남성의 범죄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미국 정계가 충격에 빠졌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 미 CNN 방송은 미국 사법당국 소식통을 인용, 지난 28일 펠로시 부부의 자택에 침입해 폴을 둔기로 폭행한 남성이 체포 당시 케이블타이 여러 개와 덕트 테이프가 든 가방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남성은 폴을 폭행하기 전 "낸시 어딨어, 낸시 어딨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펠로시 의장을 찾으러 다니는 등 모습을 보인 까닭에 펠로시 의장을 노리고 침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당 주요인사를 겨냥한 이번 사건의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자 미국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극단주의 세력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 퀴글리 미 하원의원(민주·일리노이)은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한 인터뷰에서 "(펠로시 의장의 남편에게 가해진) 그 야만적 공격은 (정치인에 대한)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완전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정치인과 가족을 위한 더 많은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역시 민주당 소속인 데비 딩겔 하원의원(미시간)은 2년 전 보수성향 언론 폭스뉴스의 진행자인 터커 칼슨이 방송에서 자신과 관련한 언급을 한 직후 무장한 남성들이 집 앞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면서 확실한 조처가 없으면 조만간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사건이 상대방 진영 정치인을 '악마시'하는 미국 정치권의 최근 풍토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이 오랫동안 펠로시 의장을 '마녀', '거짓말쟁이' 등으로 지칭하면서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펠로시 의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 극단적인 폭력행위로 표출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2010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웹사이트를 재단장하면서 불길에 휩싸인 펠로시 의장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를 활용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의 지역구인 샌프란시스코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경쟁했던 존 데니스는 펠로시 의장을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녀로 묘사한 선거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도 몬태나,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지에서 펠로시 의장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이 나라를 파괴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의 공화당 선거 광고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론 주장 등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을 공화당을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29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화당과 그 대변인들은 정기적으로 증오와 음모론을 퍼뜨려왔다"며 "이것의 결과가 폭력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나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펠로시 의장 부부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며 선 긋기를 시도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은 "우리는 정치적 의견의 차이를 가질 수는 있지만, 폭력은 언제나 잘못된 것이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침묵을 지키는 상황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전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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