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극복에 가장 좋은 약은 '위로와 지지'"

입력 2022-11-04 06:13   수정 2022-11-04 09:57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극복에 가장 좋은 약은 '위로와 지지'"
영화 '굿 윌 헌팅' 대사 "네 잘못 아니야" 같은 작은 위로가 큰 도움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영화 굿윌헌팅에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은 어릴 적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윌(맷 데이먼)에게 "네 잘못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는 말로 위로를 반복한다.
계속된 숀의 얘기에 그토록 강해 보였던 윌은 결국 울면서 숀에게 매달리고 세상에 마음을 열게 된다.


사실 굳이 이 영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네 탓이 아니야", "네 책임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너무나 흔히 쓰는 위로의 표현이다. 어쩌면 그냥 지나가듯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 말 한마디에 우리는 큰 힘을 내곤 한다.
이태원 참사로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뿐만 아니라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 뉴스와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사고를 지켜본 사람들에게까지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숀이 윌에게 거듭했던 "네 잘못이 아니야"와 같은 위로의 말이 지금 그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임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4일 "우리가 지나가는 듯이 하는 작은 위로에도 큰 위안을 얻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지만,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하고 있고, 나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전문의는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은 그 어떤 치료보다 힘이 된다"면서 "타인에 대한 그런 응원은 결국 나에 대한 응원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반대로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표현도 있다. 대표적인 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만 잊어버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등이다. 이런 말은 지지와 공감이 결여돼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염지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면 빨리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대처방안을 고민해야 하고, 누군가를 상실했다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상실의 슬픔을 나누고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작정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그냥 덮어버리기보다는 사건에 잘 대처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와주는 게 좋다는 의미다.
만약 혼자서 힘들다면 전문가나 국가트라우마센터 등을 찾아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는 외상으로 인한 아픔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는 것이고, 가족과 주변인은 고통받는 이에게 지지와 공감을 보내는 것이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환자 치료 경험으로 볼 때 트라우마 증상이 있더라도 가족과 친구들의 정서적인 지지를 받으면 대부분은 수주나 수개월 이내에 회복이 된다"면서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하고 오랜 기간 지속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아닌지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bi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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