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브라질이 부러워' 위기의 미국 민주주의

입력 2022-11-09 15:27  

[논&설] '브라질이 부러워' 위기의 미국 민주주의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지난달 30일 치러진 브라질 대선은 여러모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남미 최다 인구국이자 한때 세계 8위 경제 대국이었고, 지금도 15대 경제국에 속하는 브라질의 이번 대선은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8년의 재선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010년 퇴임했다가 부패 혐의로 구속된 뒤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3선에 도전한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의 흥미진진한 맞대결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계 정가의 관심은 '열대의 트럼프(Trump of the Tropics)'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과연 대선 결과에 승복할 것인지였다. 그는 선거 전부터 전자투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이 패하면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을 수없이 해왔다. 오죽하면 친미 노선을 걸어온 그에게 미국 정부가 "민주 절차를 존중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을 정도다. 세계 주요 언론은 보우소나루가 지면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선거 불복 폭동과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선거는 룰라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안팎의 안정적 우위를 지켰던 룰라였지만 막상 결선투표에서는 양측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1.8% 포인트 차의 박빙 승부였다. 예상대로 보우소나루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그의 지지자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불을 지르는 등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브라질 정국은 수일 만에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 선거 불복 논란이 확산하지 않은 이유는 정부와 정치권의 신속하고 결정적인 대응이었다. 개표 결과가 나온 뒤 상원 의장, 검찰총장, 선거법원 수장 등이 TV 생중계를 통해 승자를 발표했고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하원의장을 비롯해 다른 우파 정치인도 이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의 러닝메이트였던 아미우통 모랑 부통령도 "더 징징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졌고 항의할 것도 없다"고 했다. 정치적으로 고립된 보우소나루는 선거 후 사흘 만에 "헌법을 준수하겠다"며 권력 이양 절차 개시 입장을 밝혔다. 여전히 소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SNS에서 '군부 쿠데타'를 촉구하는 일부 극우 정객들의 가짜뉴스도 넘실대지만, 브라질은 빠른 속도로 차기 권력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미국 언론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1988년 바이든이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민주주의를 시작했던 브라질로부터 배워야 할 처지"라고 했다. '미국의 최대 수출품은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했던 미국이 남미의 후발 민주 국가로부터 교훈을 찾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NYT는 브라질의 전자투표가 민주주의를 지킨 중요한 요소였다고 분석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브라질 전자투표는 불과 서너 시간이면 당선자를 가려낸다. 2000년 도입된 이래 지금껏 부정이나 조작 사례가 드러난 것은 한 차례도 없었다. 반면 손으로 투개표를 하는 미국은 주마다 심지어 카운티마다 제도와 규정이 달라 개표 후 며칠이 지나도 정확한 선거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근 일주일 동안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SNS를 통해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확산시켜 의심의 씨앗을 뿌렸고 이것이 의회 폭동으로 이어졌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이 여전히 진행 중인 미국은 8일 상원의원 3분의 1과 하원의원 전체를 뽑는 중간선거를 치렀다. 민주·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간 표 격차가 1%포인트 안팎의 펜실베이니아주와 조지아주 등 격전지에서 개표가 장기화하면 부정선거 논란이 또다시 미전역을 강타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부정선거가 다시 시작됐다"며 군불을 지피고 있다. CBS 뉴스는 공화당 후보 절반 이상이 '패할 경우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확실히 위기다.
kn020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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