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시킬 건 이탈리아 아니라 밀입국 브로커…EU 차원 해법 찾아야"
지중해 떠돌던 난민 구조선, 伊 거부에 결국 프랑스 입항
(서울·로마=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신창용 특파원 = 지중해 난민선 수용 문제를 두고 프랑스와 마찰을 빚어온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11일(현지시간) "프랑스 정부의 공격적인 반응에 깜짝 놀랐다"며 "이는 이해할 수 없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이탈리아 총리 관저인 로마 키지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프랑스는 자국 해상 구호단체인 SOS 메디테라네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 '오션 바이킹' 입항을 허용한 뒤 이탈리아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지중해 중부에서 표류하는 이주민 234명을 구조한 오션 바이킹은 애초 이탈리아에 입항할 계획이었으나 이탈리아가 입항을 불허하면서 3주 가까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에 머무르다가 이날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툴롱에 입항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날 오전 8시 50분께 입항한 이 선박에 탄 이민자 전원에 대해 선별 작업 없이 하선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극우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경 대응에 나선 이탈리아가 난민 구조선에 탄 이주민들을 선별해 일부만 하선시켜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비난을 사는 상황을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프랑스가 난민 구조선의 자국 입항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하선한 이민자들은 대기 구역에 수용된 채 난민 신청 절차를 기다리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부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탈리아가 오션 바이킹의 구조 요청을 무시한 건 "부끄러운 일"이고 "이기적"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다르마냉 장관은 "프랑스는 이탈리아가 책임 있는 유럽 국가처럼 행동하지 않기로 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가 양국 관계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는 보복 조치로 유럽연합(EU) 일부 회원국끼리 난민을 나눠서 수용하자며 지난 6월 맺은 협약에 따라 이탈리아에서 이주민 3천500명을 받기로 한 계획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다른 회원국에도 이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가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서 깜짝 놀랐다"며 "이런 반응은 이해할 수 없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올해에만 약 9만명의 이주민을 수용했다고 언급하며 "무엇 때문에 프랑스는 그렇게 화가 났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고립시킬 것이 아니라 밀입국 브로커들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멜로니 총리는 문제를 풀 해법은 3가지라고 전제했다.
첫째는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오려는 이주민들이 하선할 수 있는 유일한 항구로 남는 것인데, 자신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공정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지금처럼 난민 구조선이 올 때마다 이탈리아가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몰타와 다투는 것인데, 그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멜로니 총리는 마지막 세 번째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의 국경을 방어하고, 이주민들의 출발 자체를 저지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거점을 마련해 난민 신청자들이 지중해에 오기 전 그곳에서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멜로니 총리는 "우리는 EU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며 "이주민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공동의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프랑스 정부의 격앙된 반응이 멜로니 총리의 성급한 발표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8일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이 프랑스가 오션 바이킹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프랑스 내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하자 멜로니 총리는 몇 시간 뒤 총리실을 통해 성명을 내고 "프랑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멜로니 총리가 안사 통신의 보도 이후 성명을 낼 때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프랑스 정부에 이를 공식 확인했는지 의심된다며 단순히 보도만 보고 성급하게 발표에 나선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프랑스에서도 난민 문제는 민감한 이슈여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데, 프랑스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에 멜로니 총리가 마치 외교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선전하면서 프랑스 정부 역시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매체는 진실이 무엇이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hwangch@yna.co.kr,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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