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인 굶어 죽는데 '기근' 선포는 '미적미적'

입력 2022-12-14 17:45  

소말리아인 굶어 죽는데 '기근' 선포는 '미적미적'
세계식량안보단계 평가기구 "아직 기근 아냐"…"현실 미반영"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1. 가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의 거대한 난민촌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2. 영양실조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의 울음소리가 소말리아 병동의 적막을 깨뜨린다.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 처한 소말리아 곳곳에서 굶주린 사람들로 이처럼 끔찍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지만 소말리아의 상황이 공식적인 '기근'(famine)에 아직 해당하지 않는다는 국제기구의 판단이 나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엔은 식량 위기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정상(Minimal)-경고(Stressed)-위기(Crisis)-비상(Emergency)-기근(Famine)' 등 5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세계의 식량 안보 단계를 평가하는 기구 '식량안보 단계분류'(IPC)는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소말리아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의 상황이 공식적으로 기근을 선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에 접근하긴 했지만 이를 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기상학자들의 예상대로 가뭄이 내년 봄까지 계속된다면 기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끔찍한 결과는 잠시 피할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유엔과 주요 국제 구호 기구가 통제하는 IPC가 기근을 선포하는 데에 신중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식적으로 기근을 선포할 경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엄청난 기부를 끌어낼 수 있어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지난 10년간 기근이 선포된 것은 2011년 소말리아와 2017년 남수단, 단 두 차례뿐이다.
그럼에도 이미 소말리아가 이미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을 감안할 때 현지 구호 단체의 종사자들과 의사, 외교관들은 IPC의 이번 판단에 당혹스러워하거나 방법론상의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IPC도 급성 영양실조 상태인 소말리아인이 560만 명으로 지난 1월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이 가운데 21만4천 명이 이미 기아 상태에 놓였다고 추정했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급증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가뭄으로 인한 사망자 집계를 수 주 안에 공표할 예정인 가운데,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사망자가 최소 수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이날 개막한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도 식량 안보와 기후 변화라는 '쌍둥이 위기'가 주요 의제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IPC가 소말리아의 전체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가뭄으로 타격을 받은 지역들이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통제를 받는 지역이어서 국제 구호 단체의 활동이나 피해 규모를 판단하기 위한 정확한 정보 수집이 어려웠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IPC의 호세 로페스는 NYT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결론이 항상 여론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기근을 선포하지 않은 것은 주관적 감정이 아닌 수치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근을 판단하는 IPC의 방법론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로 이사회가 조만간 변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IPC는 이번 보고서에서 원조 단체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올가을로 예상됐던 기근을 막았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속하는 가뭄과 무장단체 알샤바브의 공세, 해외 원조의 감소 등으로 기아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내년 초에는 630만 명, 같은 해 4월 이후에는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830만 명으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게 되면 소말리아 중부의 바이도아 주변을 비롯해 여러 지역이 공식적인 기근 상태에 들어설 것이라는 게 IPC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구호 단체들이 지금 당장 기근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논쟁은 좋든 싫든 '기근'이라는 명칭이 지닌 위력을 반영한다고 NYT는 분석했다.
실제 서양에서는 기근이라고 하면 1984년 에티오피아의 끔찍한 고통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명인들이 주도했던 기금 모금 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떠올린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2011년 당시 소말리아에 기근이 선포되자 유엔의 소말리아 구호 기금이 수일 안에 두 배로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hyunmin6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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