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실종 관여한 전직 경찰관…반체제 인사 등 '전기고문' 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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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납치와 고문 행위로 악명을 떨친 전직 경찰관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2일(현지시간) 텔람 통신과 일간지 라나시온 등 아르헨티나 매체에 따르면 연방 5호법원은 1976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건축학과 대학생 에르난 아브리아타 실종에 관여한 혐의(불법적 자유 박탈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마리오 알프레도 산도발(69)에게 징역 15년형을 판결했다.
경찰관 출신인 산도발은 이른바 '더러운 전쟁' 시기(1976∼1983년)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반체제 인사 탄압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해군기술학교(ESMA)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활동적인 요원 중 한 명이었다.
약 5천명의 저항 인사와 학생들이 ESMA로 보내졌는데, 대부분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거나 숨졌다. 이 중 많은 피해자가 항공기에서 바다로 던져지는 '죽음의 비행' 방식으로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산도발은 ESMA에서 '그릴드 스테이크'(Grilled Steak·스테이크 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산도발이 금속 침대 프레임에 사람들을 묶은 채 전기로 고문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군사정권이 무너진 뒤 프랑스로 도피해 국방·안보 컨설턴트로 신분을 세탁한 뒤 수년간 대학교와 연구소 등지에서 강의하다 눈썰미 좋은 한 대학생에 의해 발각됐다.
이후 파리 교외에 있는 자택에서 체포됐다.
체포 당시 산도발은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한 상태였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범행 당시엔 프랑스인이 아니었다"며 수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해 2019년 그의 신병을 인도받았다.
ESMA 생존자이자 아브리아타의 동료인 카를로스 로사는 텔람 통신에 "96세를 앞둔 아브리아타 어머니 등과 함께 시작한 이 투쟁이 46년 만에 인정받았다"며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한 아브리아타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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