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판 '사랑과 전쟁' 위기의 부부들…"그래도 둘이라 버틴다"

입력 2023-01-10 10:51  

우크라판 '사랑과 전쟁' 위기의 부부들…"그래도 둘이라 버틴다"
전쟁의 공포 속 '악전고투'…춥고 비좁은 대피소·지하실서 '티격태격'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전쟁이 할퀴고 간 우크라이나 동부의 작은 탄광도시 시베르스크.
이곳의 한 지하 대피소에서 10개월을 지낸 올렉산더(68)와 루드밀라(66) 뮤레네츠 부부는 요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
결혼한 뒤로 40년간 이렇게 긴 시간을 붙어있던 적이 없었는데 전쟁통에 춥고 비좁은 대피소에서 줄곧 함께 생활하다 보니 툭하면 말다툼이 오가곤 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이처럼 계속된 전투와 혹한의 날씨로 장시간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부부들이 여러 면에서 한계 상황에 놓여 있다고 9일(현지시간) AFP통신이 보도했다.
도네츠크주 동쪽 경계 근처에 있는 시베르스크에는 지난해 여름 이후로 러시아군의 미사일과 로켓포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도시 사수에 성공했지만 주택과 학교, 공장들은 폐허가 됐고 주민 1만2천명 중 대부분이 피난을 떠났다.
뮤레네츠 부부가 사는 지하 대피소에서는 불과 10㎞가량 떨어진 최전선의 포격 소리가 계속 들려와 이 도시가 여전히 러시아군의 사정거리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전쟁의 공포가 날마다 엄습하는 가운데 이들 부부는 휴대전화 연결도 안 되고 마실 물과 난방 수단도 부족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이런 긴장된 생활은 부부관계에도 금을 냈다.
전쟁 전 철도차량 수리 일을 했던 남편 올렉산더 뮤레네츠는 "이전에는 보통 일터에서 시간을 보낸 뒤 저녁에만 함께 있곤 했는데 요즘은 언쟁이 잦아졌다"며 "아내에게 '입 좀 닥치라'고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고 불평했다.
부인 루드밀라도 "지난여름에는 길거리에서 요리를 했는데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밖에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겨울이 되고 외출하기 어려워진 뒤로 그는 과학소설(SF) 읽는 것을 부부싸움의 탈출구로 삼고 있다.
올렉산더(55)와 타마라 시렌코(63) 부부는 장작을 패서 쟁여놓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지만, 지하 대피소에서 웅크리고 지낸 지난 8개월은 둘 사이에 적잖은 악영향을 미쳤다.
올렉산더 시렌코는 "줄곧 같이 있어 떨어지지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지하실에서 보낸 시간이 부부 사이를 가깝게 하지는 않았다"고 돌아봤다.
시렌코 부부는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지내는 것이 덜 암울하다고 말한다.
올렉산더 시렌코는 당뇨로 부어오른 아내의 다리를 매일 새 붕대로 감아주고 끊임없이 농담을 건네 아내 기분을 북돋워 주곤 한다며 "(아내가) 계속 투덜대기는 해도 지하실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아내 타마라도 "남편 없이 혼자서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inishmor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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