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챌린저 뱅크·인가 세분화 등 거론…"모든 가능성 검토"
보수 체계도 수술대에…"인터넷은행으로도 안됐다" 한계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금융당국이 5개 은행을 중심으로 한 은행산업 구조 전반을 수술대에 올렸다.
은행업 과점 체제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장사로 이어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편의·효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다.
금융당국은 은행업 진입 정책 변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는 동시에 '돈 잔치' 논란이 벌어졌던 성과급 등 보수 체계 전반도 대대적으로 손질할 계획이다.
◇ 고금리 속 최대 실적·성과급 잔치…"누구라도 문제 제기할 것"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2일 1차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시 한번 은행권 '과점 구조'를 꼬집었다.
김 부위원장은 "은행업 정부 인가에 의해 제한적으로 설립·운영되는 과점적 구조"라며 "고객에게 충분한 선택권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자 수익에만 치중하고 예대금리차를 기반으로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저금리 시기 등을 거치며 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기준금리 상승으로 손쉽게 돈을 벌면서, 늘어난 이익을 공익에 환원하기보다는 내부 임직원들의 성과급 늘리기 등에만 치중했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 성과급은 모두 1조3천823억원으로 파악됐는데, 전년 성과급 총액(1조19억원)보다 약 35%나 늘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까지 '은행 돈 잔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하며 논란은 더 일파만파가 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돈 잔치'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은행 고객들은 분명히 어려워졌는데 고객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은 돈을 벌었다"며 "다음 질문은 그럼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냐는 것인데 어떤 혁신적인 노력을 했고 서비스를 했는지를 물으면 거기에 대한 마땅한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 영국식 챌린저 뱅크 도입되나…경쟁 촉진하고 소비자 선택권 늘려
금융당국은 이날 회의에서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과 금리체계 개선, 보수 체계 개선, 손실흡수 능력 제고, 비이자 비중 확대, 사회공헌활동 활성화 등 6개 검토 과제를 제시했다.
이 중 과점 체제 완화를 위한 챌린저 뱅크 및 인가 세분화(스몰 라이선스) 도입 방안 등이 시장 주목을 받고 있다.
챌린저 뱅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실 은행 인수·합병(M&A)으로 6개 주요 금융 그룹을 중심으로 한 과점 체제가 심화하자 영국 금융당국이 그 대안으로 새롭게 도입했던 방식이다. 정보기술(IT) 기술을 활용해 특화된 소매금융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규제당국이 경쟁 촉진을 위해 새로운 은행의 시장 진입이 용이하도록 인가 체계를 개편하면서 챌린저 은행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소수자 커뮤니티, 고액자산가, 신용점수가 없는 청년 등 매우 구체적인 지역사회와 틈새시장을 겨냥한 상품 출시하는 게 특징"이라고 부연했다.
인가 세분화는 단일 인가 형태인 은행업의 인가 단위를 낮춰 소상공인 전문은행 등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은행들을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 전문은행, 도소매 전문은행, 중소기업 전문은행 등이 나올 수 있다.
모두 금융시장에 새로운 '메기'를 등장시킴으로써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이 밖에도 금융당국은 은행권 내 경쟁 촉진을 위해 지방은행 공통 플랫폼 구축 등도 검토 중이다.
영업 채널이 부족한 지방 은행이 수도권 등 다른 지역의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단 킥오프 회의였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두고 있다"며 "다양한 업권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 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은 회의에서 자산관리(WM) 영업 규제 완화를 통한 비이자 부문 수익 확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은행업계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 요건 완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 클로백·세이 온 페이 등 임원 성과급 제도 손질도 주목
보수 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는 금융사 임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는 '클로백'(claw back)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도 찾는다.
현재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는 '회사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연 지급 예정인 성과보수에 실현된 손실 규모를 반영해 재산정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
금융사 경영진 보수 결정 과정에 주주가 참여하는 제도도 도입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시행 중인 '세이 온 페이'(say on pay) 제도 등을 참고해 개선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상장사가 최소 3년에 한 번 경영진 급여에 대해 주주총회 심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단기 성과를 중심으로 성과급 지표가 구성된 건 아닌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성과급 일부를 이연 지급하는 제도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등도 살필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은행권 개편 작업에 공감을 대체로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과점 체제 완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엔 회의적인 시각도 읽힌다.
이미 소비자 편익 증진과 금리 경쟁 등을 목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했지만, 대형 은행과의 경쟁은 역부족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5대 은행 자본금이 다 3조∼4조원 수준인데 여수신 비중을 바꾸는 정도의 경쟁이 가능한 사업자가 쉽게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실제 과점도가 높은 게 맞는지 등에 대한 논의부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산업 경쟁도평가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업 집중도가 낮아져 전반적 경쟁도가 개선됐으며,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 효과가 서서히 발현 중"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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