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장기화 속 러 고립 심화에 '전략 파트너' 중국도 딜레마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현란한 수사는 있었지만, 구체적 협력과 지원 방안은 모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주년(24일) 직전에 이뤄진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러시아 방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외교 현장에서 화려한 언변과 제스쳐로 유명한 왕이 위원은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현재 국제 정세는 복잡하고 엄중하지만 중·러 관계는 국제 풍운의 시련을 겪으며 성숙하고 강인해졌으며, 태산처럼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왕 위원은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전략적 집중력을 유지하고 정치적 상호 신뢰를 심화하고,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실무적 협력을 확대하면서 양국의 정당한 이익을 수호하고 세계 평화·발전을 촉진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견제 메시지도 빼지 않았다. 왕 위원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는 지금까지 제3자를 겨냥하지 않았으며, 제3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제3자의 협박은 더더욱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서방에 맞선 '준동맹'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부정하는 한편, 개전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에 견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중국 측 회동 결과 발표에 대러시아 교역을 포함한 양국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은 모호했다. 미국이 계속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는 대러 무기 지원과 관련된 언급은 물론, 러시아에 현찰을 공급하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교역 확대에 대한 언급도 중국 측 발표엔 없었다.
이에 앞선 왕 위원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간 회동 결과에 대한 중국 측 발표에도 협력과 관련한 구체성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실질적으로 깊이 있는 경제 및 안보 협력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대외 발표에서는 말을 아낀 셈이다.
중국은 그간 중국과 러시아 간의 정상적인 교역은 상황과 관계없이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누차 피력해왔지만, 이번 왕이 위원의 방러 관련 중국 측 발표에는 협력 강화의 방향성만 있을 뿐 구체성은 미미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2024년 목표인 무역 규모 2천억 달러(약 260조 원)를 계획보다 빨리 달성할 것이라는 근거가 충분하다"며 양국 간 무역 강화의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이런 중국 측 태도는 우크라 전쟁 장기화 상황에서 중국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의 전략 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당면한 최대 과제인 경제 회복을 위해 서방과의 관계를 포함한 대외 관계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서방이 중국과 러시아를 '한 편'으로 규정한 채 끊임없이 중국의 대러시아 무기 지원 가능성 등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은 중국의 대서방 접근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도 유지하면서 서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러 경제협력 등에 대한 공개적이고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한 것일 수 있어 보인다.
내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를 거쳐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를 공식적으로 출범시키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외톨이'가 된 러시아의 '뒷배' 또는 '한 편' 이미지가 유지되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22일 대변인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이 미국-러시아 간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이행 중단을 선언한 데 대해 협상으로 이견을 해소하길 희망한다고 밝혔을 뿐 러시아 편을 들거나 미국을 비판하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제 관심은 중국이 우크라 전쟁 개전 1주년인 24일 발표할 것으로 예고한 '정치적 해결책'의 내용에 쏠린다.
외교가에서는 주권 존중, 영토의 완전성 확보, 유엔 헌장 존중 등의 원칙과 시 주석 안보 구상인 '글로벌안보이니셔티브'의 핵심인 '안보 불가분 원칙(일국의 안보 강화가 타국의 안보를 해쳐선 안 된다는 의미)' 등을 담는 한편, 러-우크라 양측의 평화 협상을 촉진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조건 없는 즉각적' 평화협상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다면 그것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발언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의미를 담게 돼 러시아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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