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치평론가·30세 직장인 "中본토인 점점 더 들어올 것"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TV·라디오 방송에 국가안보 프로그램 편성 의무화, 토지 매매 문서에 국가안보 조항 삽입, 야권 인사 47명 기소 최대 국가보안법 재판 개시, '중국 교육과정' 초중고 첫 설립 허가….
모두 홍콩에서 지난 2월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26년 전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반환될 때 중국은 향후 50년간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3년 전 중국이 제정해 홍콩에 시행한 홍콩국가보안법으로 야권은 궤멸했고 집회와 시위는 사라졌으며 이민 붐 속에서 20만 명이 떠났다.
그런 상황에서도 당국의 '정지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1일 평범한 30대 홍콩인 웡모 씨와 언론인 출신 정치 평론가 조니 라우(70) 씨의 생각을 들었다.
◇ "중국이 홍콩에 대한 50년 자치 보장 약속 깼다"
웡씨는 "중국이 50년은 홍콩의 자치 보장하겠다고 해놓고 깼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민주 진영 47명에 대해 재판을 하고 있는데 이제 2019년 시위 관련해 기소, 재판 좀 안 했으면 좋겠다"며 "매일 그런 뉴스가 나오니 해외 친구들은 다들 홍콩이 안전하냐고 물어본다"고 말했다.
웡씨는 2019년 수백만 명이 참여한 홍콩 반정부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이 반대해 시위 현장에는 못 나갔다. 그러나 주변에 참가한 친구들이 있고 시위가 벌어진 이유를 이해한다"며 "그 친구들은 다행히 모두 체포는 안 됐지만, 일부가 영국, 대만, 호주로 이민을 갔다. 체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변하는 홍콩에 있기 싫어했다. 그 친구들이 돌아올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1997년 홍콩 주권이 반환됐을 때는 우리 친척 상당수가 캐나다, 호주, 대만으로 이민 갔고 지금까지 안 돌아오고 있다"며 "그런데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시행 후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모두가 이민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며 "더이상 나쁜 일 없이 경제라도 잘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웡씨는 2021년 12월 입법회(의회)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기조로 홍콩 선거제를 전면 개편하면서 당시 선거에는 친중 진영 후보만 나섰고 투표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그는 "그 입법회 선거에는 우리 부모님도 투표하지 않았다. 다들 관심이 없었다. 뽑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부모님은 2019년 시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친중도 아니다"고 말했다.
라우씨는 "전체적으로 입법회는 이미 정부의 일을 감독하기보다는 정부의 이슈를 지지하는 거수기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찌 됐든 홍콩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특징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정부, 언론의 자기검열 원해…국가보안법으로 통제 강화"
이런 상황에서 홍콩이 지난해 말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개시한 새로운 비자 프로그램 지원자의 3분의 2가 중국 본토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웡씨는 "고급 인재를 유치한다면서 중국인만 우대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중국인들이 자녀를 홍콩 학교에 보내려고 홍콩에 원정 출산하러 진짜 많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특히 공공 의료 분야 인력이 부족해서 중국인을 뽑는다고 하는데 내 의사, 간호사 친구들은 다르게 말한다"며 "공공 의료계 인력이 부족한 건 임금이 낮기 때문인데 처우를 개선해서 홍콩인을 채용할 생각은 안 하고 중국인으로 채우려 한다고 비판한다"고 전했다.
라우씨는 TV·라디오 방송에 국가안보 프로그램 편성을 의무화한 것과 관련해 "방송 면허 규제와 관련된 사안이라 그들은 의무를 따라야 하고 그 점에서 보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보다는 정부가 원하고 장려할 언론의 자기검열이 주요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그와 동시에 국가보안법 같은 다른 수단을 통해 통제력 상실을 방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웡씨는 "그런 규정이 생겼는지도 몰랐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가 TV를 보냐. 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를 보지. 어른들만 TV 본다"고 코웃음을 쳤다.
홍콩이 지난해 주민 6만 명의 순유출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도 지난달 전해졌다.
이에 대해 라우씨는 "홍콩 엑소더스는 앞으로는 완만히 이어질 것"이라며 "주요 그룹(정치인, 시위 참가자 등)은 이미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의 추세는 더 많은 중국 본토인들이 떠나는 홍콩 인구를 대체하길 바라는 중국 당국자들의 홍콩 정책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또 "홍콩은 교육 분야에서 여전히 일정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지만 '애국적 교육'의 일환으로 중국 콘텐츠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웡씨는 "지난 1월 중국과의 왕래가 재개되자마자 본토인이 많이 들어왔다"며 "엊그제 퇴근길에 지하철 한 칸 전체에서 만다린(푸퉁화·중국 표준어)이 들려 놀랐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익숙한 풍경이었을 텐데 2019년 시위를 겪고 나니 그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친구들끼리 모이면 점점 더 만다린이 사방에서 많이 들린다고들 한다. 좋고 싫고를 떠나 그들의 존재가 점점 더 자각되고 있다"며 "주변에서 만다린이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에서 누가 만다린을 쓰면 거부감이 들고 사람들이 싫어한다. 다들 만다린을 쓰면 싫어한다"고 밝혔다.
라우씨는 "캔토니즈(광둥화)가 홍콩인들의 일상에서 사라지리라 생각은 안 한다"면서도 "홍콩에서 만다린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질 것이고 홍콩 정부는 캔토니즈와 함께 만다린을 일부 공식 행사에서 동시에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우리는 중국 본토에서 지방 사투리와 언어들이 교육이나 방송에서 금지된 사례를 참고해 향후 추세를 지켜봐야 한다"며 "다만 홍콩에서 캔토니즈를 없애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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