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가치 적어' 퇴각 관측에도 "도시 중서부 방어 집중"
프리고진 "우크라군 반격 준비하는듯…러군 병력·탄약 보내라"
'우크라군 포로 피살' 영상 돌아…젤렌스키 "살인자 찾아내겠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가 러시아의 공세로 함락 위기에 몰렸으나,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에 대한 사수 의지를 드러내면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군 참모부 정례회의에서 바흐무트 수호 의지를 재확인했다면서 이 지역에서의 전력을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우크라이나군이 이곳에서 퇴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일축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BBC 방송,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밤 연설에서 "이들(군 수뇌부)이 철수하지 않고 현 태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며 "수뇌부는 이런 입장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사령관에게 바흐무트에서 우리 사람들을 도울 적절한 병력을 찾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주요 도시인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라뱐스크로 진격할 수 있는 요충지다. 러시아가 지난해 7월부터 8개월 넘게 이곳에 공세를 집중하면서 양쪽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도시는 거의 완전히 파괴됐다.
이에 바흐무트 전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길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기록되고 있다.
러시아는 용병 와그너그룹을 중심으로 도시의 3면을 압박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날 오전에도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바흐무트와 인근 마을에 대한 공격을 계속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세르히 체레바티 동부 사령부 대변인은 지난 5일 밤 현지 방송에 "탄약과 식량, 의약품을 공급하고 부상자들을 후송해 나올 기회가 있다"며 도시 안팎을 잇는 보급로가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서방 언론과 군사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에서 철수를 시작했다는 관측과 분석을 잇따라 내놓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군인들의 말을 인용,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 3분의 1가량 지역에서 철수를 완료했으며 더 산업화되고 고층 건물이 많아 방어가 용이한 도시 중부와 서부 지역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흐무트가 전략적 가치보다는 상징적 가치가 더 있는 곳이므로 큰 손실을 보면서 방어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리처드 대넛 전 영국 육군 참모총장은 전날 "바흐무트가 많은 러시아인들의 목숨을 빼앗는 모루(대장간 쇠 받침대) 역할을 한다는 목적을 이룬 만큼, 이제 우크라이나가 더 방어 가능한 전선으로 후퇴해 그곳에서 싸움을 이어 가는 것이 이치에 완전히 맞다"고 말했다.
독일 신문 빌트는 우크라이나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이미 몇 주 전 바흐무트에서 철수를 권고했고 다른 군 수뇌부 대부분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아 젤렌스키 대통령과 견해차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에서 용병그룹 중심으로 인해전술을 펼쳐온 러시아에 최대한 많은 인력 손실을 입히면서 버티는 전략을 계속 쓰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5일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바흐무트에서 제한적인 전투 철수를 하면서 진격하는 러시아군에게서 많은 사상자를 끌어내고 있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ISW는 이어 "우크라이나군의 바흐무트 방어가 러시아 인력과 장비를 계속 소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병력이 지나친 손실을 보지만 않는다면 전략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소는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점령하고 이웃 도시로 진격하더라도 고질적인 병력·물자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면서, 바흐무트와 부흘레다르, 루한스크에서의 러시아 공세가 어떻게 이어질지에 따라 향후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흐무트 공세를 주도하고 있는 와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연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용병단을 추가 지원하지 않는 러시아군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프리고진은 이날도 음성 메시지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도시를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주변에서 노출된 상태인 와그너그룹을 옥죄기 위해 반격을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러시아군에 지원병력과 탄약을 보내라고 촉구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비무장 상태로 사살된 우크라이나 군인 영상과 관련해 "살인자들을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앞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마치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즉결 처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돌았다.
영상 속에서 무장하지 않은 이 남성은 담배를 피우고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친 뒤 여러 발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AP·로이터 통신과 미국 CNN 방송 등은 이 영상의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점령자들이 자신들의 면전에서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용감하게 외치는 전사를 어떻게 잔혹하게 죽였는지 보여주는 영상"이라며 "우리 모두 한목소리로 '영웅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응답했으면 한다. 우리는 살인자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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