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스위스의 인도주의 전통에 근거 둔 것"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자국산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반입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스위스 연방정부가 서방 국가들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립성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현행 방침을 유지하기로 했다.
스위스 연방장관 회의체인 연방평의회는 10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제3국의 스위스산 군수품 재수출 문제와 관련해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방평의회는 "이는 전쟁물자법과 중립국 스위스의 오랜 인도주의적 전통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 방침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에 스위스가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연방정부는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제재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전쟁물자법은 자국산 군수품을 구매한 나라가 다른 국가로 이를 재수출하려면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중립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국가 간 무력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에는 재수출을 못 하도록 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로 스위스제 전차를 재수출하려던 덴마크와 스위스에서 제조된 자주대공포용 탄약을 재수출하려고 한 독일의 요청을 스위스가 잇따라 거절한 것도 이 법률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자 무기 재수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서방 국가들의 압박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독일은 스위스 방산업체와 계약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재수출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고, 스위스 주재 프랑스·네덜란드 대사도 최근 스위스 언론과 공동 인터뷰를 통해 재수출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스위스 의회도 유럽 국가들의 잇단 요청에 최근 법률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스위스 상·하원 안보정책위원회는 최근 무기 재수출 금지 조항에 예외를 두는 방식으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에는 자국산 무기가 반입되는 걸 막지 않도록 법률을 바꾸자는 취지다.
이미 지난해부터 서방 국가들의 재수출 허가 요청을 잇달아 거절하며 현행 규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스위스 연방정부가 이날 성명을 통해 기존 방침 고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연방의회가 법률 개정 논의에 착수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물자법 개정은 스위스 연방의회 전체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입법화할 수 있는 데다 연방정부가 이날 규제 유지 입장을 밝히면서 서방 국가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법 개정이 신속하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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