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우려에 뱅크런 발생"…코인 사업 비중 커
가상화폐 업계 전반 위기 확산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차병섭 이도연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여파 속에 이틀 만에 또 다른 미국 중소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이 가상화폐 위기 우려 등에 따른 뱅크런(자금 대량 인출 사태)을 맞고 폐쇄됐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금융 중심지 뉴욕주의 규제당국 금융서비스부(DFS)는 이날 뉴욕주 소재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시그니처은행의 총자산은 1천103억6천만 달러(약 146조원), 총 예금은 885억9천만 달러(약 117조원) 규모다.
시그니처은행은 미국 내에서 뉴욕·코네티컷·캘리포니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영업해온 상업은행으로, 사업 분야는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 은행 업무 등이다.
시그니처은행 폐쇄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개혁 법안 '도드-프랭크법'을 대표 발의했던 바니 프랭크 전 하원 금융위원장은 자신이 이사직을 맡은 이 은행에서 지난 10일 수십억 달러 규모의 뱅크런이 발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그는 SVB 파산 이후 시그니처 은행의 가상화폐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대한 고객의 우려가 커진 결과 10일 오후에 갑자기 SVB가 공포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2001년 문을 연 시그니처은행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2018년에는 다른 은행들이 가상화폐 고객들을 받지 않으려 할 때 가상화폐 전문 은행원들을 채용하며 지난주 청산한 실버게이트 은행과 함께 가상화폐 거래 주요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이들 은행은 가상화폐 회사 간 실시간 자금 이체를 용이하게 하는 결제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이처럼 가상화폐 분야에 집중한 덕분에 2년 만에 가상화폐 기업들의 예치금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지난해 초에는 가상화폐 업체들의 예금이 전체의 27%에 달했다.
하지만 작년 한국산 코인 테라USD·루나 붕괴 사태와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가상화폐 업계에서 위기가 확산하자 이 은행에서 수십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그니처은행 측은 지난해 말 가상화폐 관련 예치금을 80억 달러(약 10조원) 줄이겠다고 발표하며 위험성 관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경우 지난 10일 기준 시그니처은행에 2억4천만 달러(약 3천130억원)의 잔고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인 팍소스도 시그니처에 2억5천만 달러(약 3천260억원)의 잔고가 있다고 전했다. 팍소스는 트위터를 통해 "(시그니처 은행에) 현금 잔고와 FDIC의 계좌당 한도를 초과하는 개인 예금 보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일 실버게이트가 뱅크런 우려 끝에 결국 문을 닫은 데다 SVB 파산의 충격이 겹치면서 시그니처은행도 뱅크런을 맞고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그니처은행의 폐쇄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문을 닫은 워싱턴 뮤추얼(총자산 3천70억 달러, 총 예금 1천880억 달러)과 이번 SVB(총자산 2천90억 달러, 총 예금 1천750억 달러)에 이어 미국 역사상 자산 규모 기준으로 세 번째로 큰 은행 붕괴 사태라고 WSJ은 전했다.
미 당국은 SVB 파산에 이어 시그니처은행 폐쇄까지 터지자 위기가 다른 금융기관들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SVB 고객들에게 적용된 것과 유사하게 '시스템적 위험에 따른 예외'에 따라 시그니처은행 고객들도 예치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시그니처은행의 모든 예금자 자산을 보장하겠다면서도 "SVB 해결안과 마찬가지로 손실을 납세자가 감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와 일부 무담보 채권 보유자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뉴욕 DFS는 "모든 규제대상 기관들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면서 "소비자 보호와 규제대상 기관의 건전성 확보, 세계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주·연방 규제당국 들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그니처은행 측은 아직 이번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시그니처은행의 폐쇄로 인해 가상화폐 산업이 규제받는 미국의 은행 시스템에서 더 멀리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늦게 일부 가상화폐 업체들은 긴급회의를 열었고 다른 업체들은 예금을 넣어둘 다른 기관을 찾아 나섰다고 WSJ은 전했다.
한편 시그니처은행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집안과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자금을 제공해왔지만, 2021년 의회 폭동 이후 관계를 끊고 트럼프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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