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 감수한 마크롱 직진 "후회없다"…'제2 노란 조끼' 피할까

입력 2023-03-21 11:48   수정 2023-03-21 17:04

후폭풍 감수한 마크롱 직진 "후회없다"…'제2 노란 조끼' 피할까
노란조끼 시위 사태 재연되며 벼랑 끝 몰릴 가능성도
야당도 거센 반발…국민투표 제안·헌법위원회에 진정
정치생명 건 모험, 독될까 약될까…측근들 "정치적 이득보다 나라 위한 선택"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프랑스 정부가 의회 입법 절차를 무시하고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이는 것에 반발해 야권이 제출한 총리 불신임안 두 건이 20일(현지시간) 모두 하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가까스로 급한 불을 껐다.
이로써 마크롱 대통령은 비록 야권과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한 연금 개혁안이 무효가 되고 정부가 해산되는 것은 일단 모면했다.
다만, 위기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민심의 분노는 사그라들 기미가 없으며 오히려 더 타오를 조짐이다.
이날 하원에서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 부결과 동시에 연금 개혁 법안이 통과되자 수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곳곳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잇따랐다.
파리 중심가에서는 "마크롱 사퇴!"를 위치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가 지난 2주간 이어진 쓰레기 수거업체의 파업으로 거리 곳곳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불을 붙이는 등 시위가 과열 양상을 띠자,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동원해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이날 시위로 파리에서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금됐다.
프랑스 노조 지도자들은 이날 의회 투표로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마크롱의 연금 개혁법이 통과됐지만, 이를 뒤집기 위한 시위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오는 23일 연금 개혁법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항의 시위를 펼치며 마크롱 정부에 대한 압박을 이어갈 예정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강경한 노조로 꼽히는 CGT는 연금개혁법이 의회를 통과했어도 "노동자들의 결의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며 국민적 지지를 앞세워 향후 강성 투쟁을 벌일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 18∼19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연금 개혁안 반대 파업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지지율은 65%에 이른다.

이번 불신임 투표를 주도한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연금 개혁법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가 표출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3위를 차지한 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의회에서의 불신임 투표는 실패했다. 이제 대중이 불신임 투표를 위해 나설 시간"이라고 말하며 정부가 밀어붙이는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독려했다.
극우 '간판'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의원은 "정부가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며 연금개혁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촉구했다.
르펜 의원은 또한 "프랑스가 겪고 있는 정치적인 위기는 투표로만 극복될 수 있다"며 마크롱 대통령에게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실시할 것도 요구했다.
이번 불신임 투표를 주도한 좌파 진영과 극우 정치인들은 이날 통과된 연금개혁법의 일부 또는 전체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헌법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미 CNN 방송은 전했다.
CNN에 따르면, 특정 법규에 대한 반대가 제기되면 헌법위원회가 이를 심리하는 데 최대 한달 가량이 소요된다.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 저항이 워낙 거센데다, 야권마저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프랑스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들은 연금 개혁에 대한 반발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경우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2018년 말부터 2019년 봄까지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노란 조끼' 시위처럼 정부가 다시 한번 벼랑끝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연금 고갈에 따른 국가 재정 파탄을 막겠다며 하원 투표를 생략한 채 연금 개혁 법안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는 헌법 제49조3항을 사용하는 승부수를 띄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8%를 얻는 데 그쳐 노란 조끼 시위 이후 지지율 최저치를 기록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연금 개혁에 대한 반발에 대해 의회를 건너뛰어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며 여론과 정치권이 들끓고 있지만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이 TV 연설 등을 통해 국민에게 연금 개혁법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표결을 하루 앞두고 AFP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자신이 추진하는 연금 개혁이 "민주적 여정의 끝까지 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을 뿐, 국민 앞에 직접 서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대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결정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나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측근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하원 표결을 생략하고 연금 개혁 법안을 입법하는 헌법 제49조3항을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금 개혁안에 대한 의회 표결에서 패배하는 것이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을 부르는 '톱다운' 방식의 결정으로 법안을 관철하는 것보다 더 큰 참사를 부를 것이란 게 대통령의 인식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고문을 지낸 다비드 아멜 의원은 "그(마크롱)는 이번 결정이 (실익보다 손해가 큰)'피로스의 승리'가 될 수 있음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며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보다는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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