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플래시 128단 적층·D램 18나노까지는 가능…그 이상은 규정 모호
"원천봉쇄 걱정했는데 안도할 수준…여전히 불리하지만 길은 열려"
중국 리스크 사라진 건 아냐…미국에 보조금 신청할 때 부담도 여전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미국 상무부가 21일(현지시간)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안을 발표하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했고 급한 불은 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규정상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미국 반도체법이 규정한 투자 보조금을 받으면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 이 기간 중국 등 미국이 지정한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면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질적인 확장이 양적인 증산으로만 규정됐기 때문에 중국 공장에서 '기술 업그레이드'를 할 길은 열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중국에서 생산 거점을 운영하며,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거나 투자 계획을 세운 상태다.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국내 업계의 설명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가드레일 세부 규정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 발표 내용만 보면 나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최상의 결과는 아니지만 최악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인데 어느 정도 길을 열어줬다. 업계에서는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의 기술 업그레이드가 원천 봉쇄될 가능성을 우려했는데, 예상보다는 규정이 안도할 만한 수준으로 나왔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 많이 노력한 덕분이다. 일단 국내 업체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돌리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기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중국 공장 내 낸드플래시 적층이나 첨단 나노 공정 등에도 제한이 없는지.
▲ 현행 미국 반도체법에서 규정하는 범용 반도체 기준인 낸드플래시 128단, D램 18나노미터까지는 일단 가능하다. 다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직 규정이 모호해서 명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당연히 우리 업계가 바라는 사항은 낸드 128단, D램 18나노보다 높은 수준으로의 업그레이드이고, 이는 향후 협의해봐야 할 부분이다. 미국이 향후 반도체법을 바꿀 수 있다고 했으니 기대해볼 여지가 있다.
-- 이제 반도체 업계의 '중국 리스크'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봐도 되나.
▲ 아니다. 미국은 이미 작년 10월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통해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기업이 첨단 반도체 장비나 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면 허가를 받도록 해 사실상 수출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수출 통제에 대해 '1년 유예' 조치를 받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단 올해 10월까지만 중국 공장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첨단 장비를 수입할 수 있다.
-- 오는 10월 규제 유예가 끝나면 어떻게 되나.
▲ 아직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10월 이후가 문제여서 우리 정부가 미국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또 한국 기업은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장비 수입과 관련해 미국 정부로부터 한시적으로 포괄적인 허가를 받은 상태지만, 허가 내용이나 기준 등에 향후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정부는 작년 10월 발표한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더 강화하는 조치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 국내 업계가 반도체법 중에서도 가장 우려했던 가드레일 조항의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됐는데, 이제 미국 보조금 관련 리스크도 사라진 것인가.
▲ 그렇지 않다. 보조금 조건 자체가 까다로워서 업계 영향과 대응 전략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재무건전성을 입증할 수익성 지표와 현금흐름 전망치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 기술과 경영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 전망치를 초과하는 수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도 부담스럽다. 보조금 혜택이 자칫하면 한국 업체에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 미국은 도대체 왜 이러는가. 왜 보조금 수혜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려고 하는가.
▲ 결국 미국의 목표가 중국의 기술 탈취를 막고,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반도체법 제정 취지 자체가 안보에 중요한 반도체를 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에서 비롯됐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금 지급 기업을 선정할 때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 앞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계획은.
▲ 상대의 패를 충분히 봐야 하므로 미국에 보조금을 신청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해 향후 대응 방향을 수립할 계획이다.
ric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