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향력 막강? 회의론도 고개…맹방 美와 관계 흔들리나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사상 최대 반정부 시위로 코너에 몰리게 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방탄용 입법'이란 비판을 받아온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서 일단 한 발짝 물러섰다.
자신에 대한 부패혐의 재판을 무마하는 데 결국 실패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적'이란 이미지가 씌워진 데다, 입법을 연기했다고 불타오른 민심이 잦아들지도 미지수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예루살렘 소재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의 기드온 라핫 선임연구원은 27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수십 개 집단이 한목소리로 들고 일어났던 만큼 '사법정비' 입법 연기 발표에도 일부는 계속 시위를 이어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설령 시위가 완전히 멈추더라도 "몇 분 안에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재개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라고 라핫 연구원은 덧붙였다.
이스라엘군 정보국장 출신으로 현재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타미르 하이만도 입법 연기만으로는 시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네타냐후가 '이런 개혁을 추진한 것이 실수였고, 향후 사법개혁 재개의 원동력이 될 모든 것을 보류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한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 권한 축소 시도 하나만을 이유로 이스라엘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 아니란 점이 이번 사태가 쉽게 진화되기 힘든 이유라고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풀이했다.
1996∼1999년과 2009∼2021년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네타냐후는 극우정당들과 손을 잡고 작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인종차별과 여성혐오 등으로 논란을 빚어온 극우 인사들에게 팔레스타인 관할권 등을 부여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에 이스라엘의 중도, 진보층은 네타냐후 정권이 국민 개개인의 권리마저 제한하려 들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이달 21일 네타냐후 정권이 의회에서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강행한 것은 이러한 국민의 불안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이에 이스라엘군 장병들조차 찬반이 갈리면서 군조직 내부에 정치색이 침투하는 상황마저 우려된다고 하이만은 경고했다.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로서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갖고 있던 이미지가 추락하고, 핵심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가 흔들린 것도 큰 손실이다.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보좌진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수개월에 걸쳐 이스라엘과 절충점을 찾으려 시도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19일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를 하고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우려'를 표시했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사법정비 입법을 둘러싼 분열로 연정이 붕괴할 위험이 초래되고서야 입법을 연기한다는 발표를 내놓았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이스라엘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던 미국 정부 주장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실상이 드러났으며, 이스라엘을 초당적으로 지지하는 미국 정치권의 기류에도 다소간 변화가 감지된다고 전했다.
예컨대 미국 민주당의 경우 여전히 이스라엘을 강하게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인 처우와 관련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밀착 행보를 보인 데 반감을 지닌 민주당 당원도 다수다.
폴리티코는 네타냐후 재집권 후 극우 인사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한데 대해 이스라엘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던 민주당 내 인사들조차 경각심을 드러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당내의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이날 워싱턴 의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 권한 축소 입법 연기를 발표한 것을 환영하면서도 "다시 추진하기 전 타협점을 찾을 것을 강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이만은 네타냐후 총리가 야권과 협의해 절충안을 도출한다면 이스라엘 독립 기념 국경일(4월 25∼26일) 이후부터 "시위 강도가 약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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