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 수수료 의존하며 사실상 '생활고'…反탈레반 외교조직 구성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외교관들이 해외 파견지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며 탈레반에 저항할 수단을 모색하고 있다고 포린폴리시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21년 8월 미군의 전격적 철수로 탈레반 정권이 수립되면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는 즉각 붕괴했다. 그 결과 당시 해외 60여개국에 파견 중이던 아프가니스탄 외교관들은 한순간에 표류자 신세가 됐다.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왜 이런 처지가 됐는지를 두고 서글픈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상당수 외교관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배신'에 아직도 분통을 터트린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가까이 탈레반과 전쟁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전망도 밝지 않다는 판단이 나오자 전격적으로 군 병력을 모두 철수했다. 당시 미국의 결정은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에 내준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아시라프 하이다리 스리랑카 주재 아프간대사는 포린폴리시에 "엄청난 배신을 당했다. 우리가 그 피해자다. 민주주의 우방국이 그렇게 우리를 배신할 줄은 몰랐다"며 분노했다.
그는 "지금 부족한 지원이야말로 아프간 민주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배신의 증거다. 우린 민주주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해 피를 흘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무능과 부패 등, 정부 붕괴의 원인을 미국이 아닌 내부에서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국 런던의 한 아프가니스탄 외교관은 "정부와 정치인이 (붕괴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국가의 힘이 부족했고, 능력이 부족했다. 부정부패와 불신이 국가를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표할 정부가 사라진 외교관들은 공과금도 내기 어려운 생활고와 싸우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체류 중인 나지풀라 살라르자이 벨기에 대사는 난방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내 앞에 쌓인 공과금 청구서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공과금을 할부로 납입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주네덜란드 대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거처를 프랑스 파리 대사관 위층으로 옮겼다고 전했다. 다른 외교관 2명도 가족을 데리고 근처 좁은 아파트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프간 공관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은 일부 영사 서비스를 처리해주고 받는 수수료다.
공관에서 여권을 발급해주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겠지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아프간 정부는 붕괴 전 리투아니아 업체와 여권 인쇄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업체가 최근 여권 배송을 거부하고 있다고 외교관들은 전했다. 업체는 계약 주체인 정부가 더는 존재하지 않아 값을 받아내지 못할 것을 우려한다고 한다.
결국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여권 300만부가 리투아니아의 한 창고에 보관돼 있다. 이 여권을 찾을 수 있는지가 아프간 외교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정부는 없어졌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노련한 외교관들은 자체적으로 아프간 외교부를 대체할 조직을 꾸리고 있다. 탈레반에 저항하는 외교관들이 아프간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알리는 역할을 맡겠다는 포부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미 2차례 대면 회의도 진행했다. 이 조직의 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의 '대사 위원회'로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대사 위원회 관계자는 포린폴리시에 "아프가니스탄에 국가를 되살리기 위한 가교를 짓고 싶다. 법적으로, 현재 운영 중인 대사관들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마지막 흔적이다. 우리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플랫폼은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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