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도 없는 단독주택 건물 대사관…창문은 커튼으로 가려
[※ 편집자 주 : '런던 Eye'는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의 이름이면서, 영국을 우리의 눈으로 잘 본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영국 현지의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소개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런던의 서북부 외곽 한적한 주택가, 대사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지역에 주영북한대사관이 있다.
19일(현지시간) 오후 지하철역에서 내려 10여분 걸어가니 큰 도로와 골목길 사이 코너에 큰 단독 주택 같이 생긴 북한대사관이 나왔다.
영국에선 사무실이나 병원이 주택 건물에 들어선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위치도, 건물도 한 국가의 대사관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방향을 잘못 들어 정문이 아니라 옆쪽으로 갔을 때는 대사관이 맞는지 바로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깃대는 깃발 없이 덜렁 서 있어서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옆 골목길에 주차한 남성에게 물어보자 그는 "구글 지도에서 봤는데 저기가 북한 대사관이더라"라며 가리켰다. 그는 이 곳 주민은 아니라고 했다.
대사관은 정문은 큰 도로를 향하고 있고 부지 옆면이 골목길에 닿아있다. 옆에는 담이 높아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담의 길이로 봐서 뒷마당은 꽤 규모가 있고, 담 위로는 농구대와 CCTV 카메라가 눈에 띄었다.
창문은 모두 불투명하게 처리되거나 영국의 많은 가정집처럼 흰색 레이스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대사관 앞쪽에는 검은색 쇠창살 담이 있고 정문은 근무 시간인데도 닫혀 있었다.
앞마당에는 외교관 번호판을 단 검은색 벤츠 두 대가 나란히 주차돼있다.
밖에서 봤을 때 북한 대사관임을 보여주는 것은 입구 문 옆의 현판과 위쪽의 장식뿐이다.
북한은 2000년 영국과 수교하고 대사관을 개설하면서 2003년에 방 7개짜리 주택 건물을 130만파운드(현재 환율 기준 21억5천만원)에 사들였다.
영국 외무부의 4월 기준 명단에 따르면 북한 대사관에는 최일 대사 등 5명이 나와 있다. 일본이 60명, 한국이 그 절반 정도니, 격차가 크다.
이날 아시아인권의원연맹 대표단은 탈북민 출신 영국 교민과 북한인권 활동가, 연구자 등과 함께 북한대사관 앞에서 해킹 범죄 중단과 인터넷 개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현수막과 팻말을 들었지만, 정식 시위는 아니었고 10여명이 20여분간 의견을 얘기하고 대사관 우편함과 우체통에 공개 서한을 부치는 형식이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들까지 왔는데도 북한대사관에선 행사 전후 약 1시간 동안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얼마 전 영국의 탈북 교민들이 와서 시위했을 때 최 대사가 밖으로 나와 항의했다가 더 요란해진 일을 감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착잡하다고 했다.
런던 시내 한복판에 태극기를 당당하게 내건 번듯한 한국대사관이 떠오르며 비교가 됐을 것이다.
런던의 외교가 인사들은 북한 외교관들이 행사장에서 위축되고 겉도는 듯한 모습을 보면 역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털어놓곤 한다.
북한 외교관들의 태도는 주영북한대사관 공사였던 태영호 의원의 탈북을 계기로 급격히 경직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인권의원연맹 대표단 단장인 하태경 의원은 21세기에 인터넷은 중요한 인권인데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을 개방하지 않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행사에 참여한 탈북민은 북한은 인터넷을 이용하긴커녕 편지도 보낼 수 없는 곳이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탈북민은 대사관이 두 개로 나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하나가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면서, 북의 주민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적이 뜸한 대사관 앞 보도에 한 여성 노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멈춰서는 영어로 적힌 현수막 내용을 유심히 보더니 행사 참가자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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