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필요 유류세 결국 연장…전기·가스 한달째 결정 지연
예타 완화는 여야 합작 추진하다 여론 역풍에 일단 정지
세수는 이미 펑크 예고…선거 앞 선심성 정책 우려 커져
(세종=연합뉴스) 박용주 박재현 기자 =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류세와 전기·가스요금 등 주요 경제정책이 벌써 정무적 판단에 휘둘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수 펑크가 이미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유류세의 단계적 정상화를 시작하지 못했고 2분기 전기·가스요금도 인상 필요성만 역설할 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총선을 1년 앞두고도 이런 식이라면 선거가 가까워지면 정책 결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전기·가스요금 결정 한달째 지연
23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이 한 달째 지연되고 있다.
전기·가스요금은 원래 2분기 시작 전인 3월 말에 결정해야 하지만 당정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서 여전히 1분기 요금이 적용되고 있다.
이번 주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만큼 사실상 5월로 넘어간 셈이다.
원가가 오른 상황에서 요금 인상을 못 한 한국전력[015760]과 한국가스공사[036460]의 미수금은 40조원에 달한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누적된 적자를 채권 발행으로 메우면서 채권시장까지 왜곡되는 국면이다.
정부 내외부에선 당정이 이처럼 요금 인상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내년 총선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꼽고 있다. 연초 난방비 대란을 겪는 정부가 이들 공기업의 자구책을 빌미로 결정 시점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 유류세 정상화 검토하다 결국 인하 유지
유류세 역시 경제정책이 정치에 휘둘린 사례로 분류된다.
정부는 최근 현행 유류세 인하 조치를 8월 말까지 4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이는 휘발유 25%, 경유·LPG부탄 37% 등 기존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정부는 유류세 인하율을 20%, 30%, 37%로 차례로 끌어올렸다. 올해 1월부터 휘발유만 인하율을 25%로 낮추면서 정상화 시동을 걸었지만 이번에 추가 정상화 대신 현행 유지를 선택한 것이다.
국가 재정 관점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인하율을 추가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올해는 2월까지 국세수입이 작년 동월 대비 15조7천억원이나 부족하다. 60조원 안팎의 초과 세수가 나왔던 2021·2022년처럼 세금을 쉽게 깎아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로 줄어든 세금(교통·에너지·환경세)이 작년 한 해만 5조5천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 관점에서는 유류세 인하의 의미는 크다.
총선이 더 가까워지는 9월에는 정상화가 더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 예타는 통과할 뻔…"선거앞 선심성 정책 우려"
반대로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조사의 문턱을 낮추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될 뻔했다.
법 개정안은 사회간접자본(SOC)·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천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경제성 없는 선심성 사업을 더 쉽게 추진하게 된다는 의미다.
여야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서 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이후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기재위 전체 회의 단계에서 일단 보류시켰다.
국가 재정에 대한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재정 준칙은 합의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3일 국회를 통과한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도 유사한 사례로 분류된다.
지역 숙원사업이지만 예타를 면제하고 부족분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 등 내용이 담긴 만큼 결국 국가 재정에 부담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주요 정책 결정이 1년이나 앞둔 총선 영향권으로 진입하는 인상이 강하다"면서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시장이나 국가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선심성 정책이 더 가속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spee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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