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매체 "中 검열 갈수록 강화…'레드 라인' 모호"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지난 18일 낮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발생한 병원 화재로 최소 29명이 숨졌다.
그러나 화재 발생 8시간 동안 중국 매체에서는 이와 관련한 소식이 단 한 줄도 전해지지 않았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해당 화재와 관련한 언급은 모두 검열됐다.
중국의 전 신문사 기자 릴리안(가명)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이는 또 다른 차원의 검열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 베이징 외곽에서 아파트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몇분 만에 소셜미디어에 화재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자신과 당시 신문사 동료 몇몇은 즉시 현장에 급파됐다고 릴리안은 설명했다.
이어 비록 현지 당국이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취재 도중에 사무실로 복귀해야 했지만, 동료들은 가까스로 화재 소식을 보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검열·단속과 3년간의 코로나19에 따른 여파,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의 투자 철수로 중국 미디어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24일 진단했다.
중국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는 관영 매체 중심이지만, 한때 빅테크 붐 속에서 그들의 투자를 받아 번성했던 온라인 매체 등 시장 기반 매체들이 최근 일련의 변화 속에서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7일 베이징 신경보 사옥에서는 약 80명의 영상 기자와 편집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경보와 중국 최고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가 6년간 운영해온 합작 벤처 위비디오(Wevideo)의 사업 종료가 발표됐다.
공식적인 사유는 사업 재편이지만, 해당 사안을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직접적인 원인은 텐센트의 투자 철회라고 SCMP는 전했다.
SCMP는 "위비디오의 운명은 강화되는 검열과 자본의 엑소더스 속에서 지난 몇 년간 빠르게 침몰해온 중국 미디어 산업에 또 하나의 조종(弔鐘)을 울린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베이징 소재 언론사에 20년간 몸담아온 한 편집자는 "중국 미디어 산업에서 많은 문제가 이미 10년간 이어졌고 특히 지난 3년간 더욱 악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열은 그러한 딜레마를 크게 악화했고 자본은 미디어 산업 진입에 대해 더욱더 우려하게 됐다. 진입하려는 자본이 더 이상 없다면 그 산업은 저물어갈 뿐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레드 라인'이 모호한 가운데 갈수록 자기 검열이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기자 릴리안은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 이후 '레드 라인'이 갈수록 늘어났다면서 "더 많은 소재에 대한 보도가 허용되지 않았다. 보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적어지면서 임금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들의 엑소더스 속에서 그 역시 신문사를 떠나 온라인 매체로 옮겨갔다.
하지만 릴리안이 온라인 매체에 합류한 지 약 1년 만에 해당 매체의 계정은 영문도 모른 채 정지됐고 그가 속한 팀은 해체됐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나 뉴스 편집 앱을 통해 콘텐츠를 유포하는 중국 온라인 매체들은 당국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지는 않지만, 당국이 정한 레드 라인을 위반할 경우 일정 기간 정지나 영구 폐쇄에 처해질 수 있다.
수천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중국 인기 건강·과학 포털 딩샹위안(DXY)도 지난해 8월 갑자기 모든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한 달간 계정이 정지됐다.
텐센트가 후원한 DXY의 직원들은 당시 계정 정지의 이유를 듣지 못했다고 전직 기자 오스카(가명)는 말했다.
다만 앞서 DXY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를 면밀히 추적했고, 당국이 배포한 독감 치료제인 중국 전통 의약품 '롄화칭원'이 코로나19 예방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2016년 중국 IT붐 속에서 텐센트, 알리바바 같은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투자했지만, 지금은 빠르게 투자를 회수하고 있다.
알리바바 계열사 앤트그룹은 2021년 말 경제 매체 차이신, 기술 관련 뉴스 포털 '36Kr홀딩스'(36Kr) 등 다양한 중국 미디어에서 투자를 접기 시작했다.
텐센트도 비핵심 사업 자원을 조정하면서 미디어 관련 인력을 줄여나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 텐센트 뉴스에서 해고된 한 기자는 그 몇 달 전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면서 과거에는 회사가 콘텐츠의 사회적 가치도 고려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익성이 프로젝트의 판단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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