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쌓인 구형 제품 중심으로 감산…"미래 투자 지속"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올해 1분기에만 반도체 사업에서 8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며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과 재고 증가,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며 반도체 불황의 골이 깊어진 탓이다.
문제는 반등 시점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감산을 공식화한 가운데 업계는 2분기부터 감산 효과가 나타나며 하반기에는 수요 회복과 맞물려 업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양사 반도체 적자 8조원…재고는 3.7조원 증가
삼성전자는 27일 올해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4조5천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 적자를 낸 것은 2009년 1분기(-7천100억원) 이후 14년 만으로, 작년 동기(영업이익 8조4천500억원)와 비교하면 13조원이 증발한 셈이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 실적이 고꾸라지며 삼성전자의 1분기 전체 영업이익도 95.5% 급감한 6천402억원에 그쳤다.
전날 1분기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도 3조4천23억원의 영업손실이라는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1조8천984억원)까지 계산하면 반년 동안 무려 5조원의 적자를 낸 셈이다.
IT 제품 등의 수요 위축에 메모리 제품 가격이 바닥을 치며 반도체 수출은 작년 8월부터 8개월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40% 줄었다.
메모리 가격은 역대급 수요 침체로 빠르게 하락하며 '현금 원가'(cash cost)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D램 고정가는 지난해 초 3.41달러에서 올해 1∼3월 1.81달러까지 하락했고, 낸드 고정가는 작년 1∼5월 4.81달러 수준에서 지난달 3.93달러까지 떨어졌다.
재고도 쌓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1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총 54조4천196억원으로 지난해 말(52조1천879억원)보다 2조2천억원 이상 늘었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재고 자산 역시 지난해 말(15조6천650억원)보다 1조5천억원가량 증가한 17조1천820억원을 기록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전날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1분기는 감산에도 불구하고 큰 폭의 판매량 감소로 인해 완제품 재고는 D램, 낸드 공히 전 분기 대비 증가했다"고 말했다.
◇ 2분기부터 감산 효과 기대
삼성전자까지 메모리 업계의 감산 행렬에 동참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2분기부터 감산 효과가 나타나며 재고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이날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부터 재고 수준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며 감소 폭이 하반기에는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감산에 따른 공급 감소 효과는 3∼6개월 후에 나타난다. 시장에서는 하반기부터 감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메모리 가격 하락세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분기부터 고객사의 메모리 재고는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감산 동참 선언 이후 투자 심리 변화도 엿보인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감산에 따라 하반기 이후 반도체 가격이 상승한다면 보유 재고가 축소된 고객의 입장에서는 반도체 가격이 낮은 지금 주문을 늘리는 것이 당연히 이익"이라며 "반도체 회사들의 감산 효과가 물리적으로 더욱 본격화될 올해 중순부터는 실질 수급이 개선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재고가 많은 레거시(구형)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을 줄이며 시장 수요 변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감산 규모나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재준 부사장은 이와 관련, "이번 생산 조정은 중장기 수요 대응에 충분한 레거시 제품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1분기부터 시작한 라인 최적화 등 추가 대응으로 감산 규모는 훨씬 의미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수요 회복 지연 등 변수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바닥을 확인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노근창 현대증권 연구원은 "고객사들의 재고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는 있지만 중국 스마트폰과 서버 회사들의 위험관리와 미국의 제재로 인해 하반기에도 수요의 불확실성은 상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적자 늪에도…"미래 투자는 지속"
반도체 적자의 늪에 빠졌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하반기 수요 회복 등 미래에 대비한 투자는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은 전날 경영 현황 설명회에서 "다운턴(하강 국면)에도 투자는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연구소 인력 지속 확대, 연구소 웨이퍼 투입 증가 등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해 미래 대응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연구개발(R&D) 투자액은 6조5천800억원으로, 실적 악화에도 이번 분기 영업이익(6천402억원)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R&D에 집중했다.
시설 투자액도 작년 동기(7조9천억원)보다 36% 증가한 10조7천억원을 집행하고 이 중 92%에 달하는 9조8천억원을 반도체에 투자했다.
김재준 부사장은 "수요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이는 선단 제품 생산은 조정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며 "전년과 유사한 수준의 캐펙스(시설투자)는 유지하며 R&D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2월 천안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을 직접 살펴보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등 연일 '초격차 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당초 계획대로 올해 투자를 작년 대비 50% 이상 줄였지만, 수요 성장을 주도할 DDR5, LPDDR5, HBM3 등 차세대 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는 지속하면서 올 하반기와 내년 시장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김우현 부사장은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기술과 제품 개발에 집중해 경쟁력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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