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국경문제 해결 원하지만…인도 '눈치' 봐야하는 부탄

입력 2023-04-28 16:55  

중국과 국경문제 해결 원하지만…인도 '눈치' 봐야하는 부탄

(서울=연합뉴스) 유창엽 기자 = 히말라야 산맥의 소국 부탄이 중국과 국경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양국 합의에 반대하는 인도의 입장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3만8천여㎢에 넓이에 인구 77만명의 부탄은 중국과 인도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북부와 서부에서 중국과 국경선이 획정되지 않아 분쟁을 겪고 있다.
인도도 중국과 획정되지 않은 국경을 공유하는데, 인도는 미획정 국경이 3천488km, 중국은 약 2천km라고 각자 주장하고 있다.
이들 세 나라가 국경 문제로 얽힌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지역 중 하나가 인도 동북부 시킴주 북쪽의 도카라(중국명 둥랑·부탄명 도클람) 고원이다.
도카라 고원은 이들 3국이 접경한 지역과 가깝다. 부탄과 중국은 서로 도카라 고원을 자국 영토라고 내세우며, 인도는 부탄의 입장을 지지한다.
인도로서는 도카라 고원이 중국 지배하에 들어가면 인도 본토와 동북부 지역을 잇는 22km 구간이 위협받기 때문에 도카라 고원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부탄과 중국이 이 지역 국경에 대해 합의해 이 지역에서 중국의 존재가 확실해지는 것을 인도가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8일 로테이 체링 부탄 총리가 최근 벨기에 신문과 한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부탄이 처한 '어정쩡한' 상황을 전했다.
체링 총리는 인터뷰에서 "(도카라 고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부탄에 달려 있지 않다"며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준비돼 있다. 다른 두 당사국(중국과 인도)이 준비되는 대로 우리는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탄과 중국은 한 두차례 회담만으로 국경선 일부를 획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부탄은 중국과 1984년 이래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진행해왔다.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자 인도 언론들이 '경종'을 울리고 나섰다. 인도 매체들은 칼럼을 통해 도카라 고원 부근의 3국 접합 구역에서 부탄과 중국이 서로 일부 구역을 교환함으로써 국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 매체는 인도로부터 수억 달러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는 부탄이 인도와 국경을 놓고 자주 무력충돌까지 하는 중국과 국경 문제 해결에 합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상황이 이같이 치닫자 체링 총리는 이달 초 자국의 한 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어떤 새로운 것도 말하지 않았고 (부탄)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중국 싱크탱크인 상하이 국제관계연구소의 류쭝이 선임연구원은 "여기서 인도는 장애물이다. 중국과 부탄이 국경 문제를 해결하면 인도만 남게 된다. 나는 인도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부탄이 1996년께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한 최종 합의에 거의 도달했다가 인도의 개입으로 불발했다고 덧붙였다.
많은 부탄인은 경제적, 군사적 힘이 커지는 중국과 국경 문제를 해결하면 자국 국익에 이로울 것으로 여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탄인 전문가는 "중국은 현실이다. 부탄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옵션을 갖고 있는가. 나는 그것이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인도 외교부의 비네이 모한 크와트라 차관은 이달 초 BBC 취재진에 "인도와 부탄은 공유하는 국익과 관련해 밀접한 접촉과 조율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도카라 고원 문제에 대해 양국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고원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인도로선 아무런 현상 변경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부탄은 1949년 인도와 우호조약을 맺은 뒤 사실상 인도의 보호국이 됐다. 이후 중국이 1950년 티베트를 강제병합하는 것을 목격한 뒤 인도에 더 밀착하게 됐다.
하지만 2007년 우호조약 개정으로 외교분야 등에서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됐다.
이에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역점사업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에 부탄의 참여를 촉구하는 등 구애 손짓을 하고 있다. 부탄은 아직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유일한 남아시아 국가다.
BBC는 부탄이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두 경제대국 중국,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좋은 처지에 놓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두 대국이 국경 문제 등으로 긴장 관계를 지속하면 점점 더 취약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yct94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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