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 40번째 국왕…영국 등 15개국 군주 천명
다른 종교·언어 등 포용…경제 어려운데 세금 부담 논란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찰스 3세 국왕이 대관식에서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임을 널리 선포한다.
대관식은 1천여년 전통의 틀을 따르면서 현대 영국의 다양성 가치를 반영해서 여러 종교, 언어, 성, 인종을 아우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 70년만…40번째 국왕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은 1066년 '정복왕' 윌리엄 1세부터 시작해서 39회째이고 찰스는 40번째 주인공이다.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1689년 공동 대관식을 올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은 70년 전인 1953년 6월 2일에 치러졌다.
대관식은 국왕이 왕위에 올랐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공식 행사로, 과거엔 권좌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였다.
지금은 화려한 보석 등으로 군주의 위용을 드러내고,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의식을 통해 국왕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국가적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서 왕실 지지를 공고히 하는 기회다.
즉위한 지 8개월이 지나긴 했지만 찰스 3세 시대가 본격 시작됨을 알리는 계기이기도 하다.
대관식 비용은 세금으로 대는데 1억파운드(1천7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왕실 지지율이 낮아지고 물가 급등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거부감도 크다. 정부는 대관식 후에 비용을 발표한다.
◇웨일스어 노래 첫 사용…14살 소년·흑인 여성 등 참여
찰스 3세 국왕은 버킹엄궁에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왕의 행렬'로 이동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해서 진홍색 예복을 입고 성직자 등을 따라 입장한다.
먼저 참석자 중 가장 어린 14살 성가대원이 대표로 환영 인사를 하고, 찰스 3세는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왔다"고 답한다.
대관식을 집전하는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예식을 시작한다. 이번 대관식 예배의 주제는 '섬기는 소명'이다.
이어 대관식에서 처음으로 웨일스어로 찬송가가 불린다.
'승인' 의식에선 찰스 3세가 제단을 바라보면 웰비 대주교가 국왕을 소개하고, 대중은 "신이여 찰스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King Charles)라고 답한다.
찰스 3세가 각각 세 방향으로 돌아서며 이를 되풀이하고 잉글랜드 가터훈장 수훈자 대표인 흑인 여성 상원의원 밸러리 아모스 남작 등이 웰비 대주교를 대행한다.
이어 찰스 3세에게 빨간색 가죽 표지의 성경을 스코틀랜드 교회 교단장이 전달한다.
◇서약에서 국교회 외 모든 종교의 자유 강조
국왕의 '서약'은 1688년 관련 법에 따라 영국 국교회를 지키고, 법에 따라 통치하며, 정의와 자비에 기반해 판단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번엔 대주교가 "모든 종교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하겠다"고 서문을 붙인다.
찰스 3세는 서약 후 특별 기도문을 왼다. 국왕이 소리 내서 기도하는 것은 처음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힌두교도이지만 총리로서 성경 골로새서 1장 9절에서 17절을 읽는다. 또, 처음으로 여성 사제가 누가복음 4장 16절에서 21절을 읽는다.
다음 대주교 설교 순서는 여왕 대관식 때는 빠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이어 영국 대관식에서 처음으로 찬송가가 영어 외에 웨일스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 등 다른 언어로도 불린다.
◇성유 의식은 비공개…레갈리아 전달에 다른 종교 성직자들 참여
성유 의식에 앞서 찰스 3세는 700년 넘은 대관식 의자에 앉는다. 이때 신의 종복임을 강조하기 위해 소박한 흰색 원피스 차림을 한다.
대주교는 성유를 손가락으로 찰스 3세의 손, 가슴, 머리에 바른다.
이 의식은 신과 왕 사이의 내밀한 사적인 순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3면 스크린으로 가린다.
성유 의식 후 신의 승인을 받은 존재가 된 찰스 3세는 무게 2㎏ 금색 코트인 '슈퍼투니카'와 무게 3∼4㎏의 '제국 망토'를 덧입고 '레갈리아'라고 불리는 대관식 물품들을 건네받는다.
보주(orb)와 홀(笏·scepter)이 대표적이고 금 박차, 팔찌, 반지 등이 있다. 이 중 비기독교적인 것들은 처음으로 다른 종교 성직자들이 건넨다.
국왕의 비둘기 홀은 카리브해 출신 여성 플로라 벤저민 남작이 전한다.
◇ '오마주'에 모든 이들 동참 요청
대주교는 대관식 왕관인 '성 에드워드의 왕관'을 머리에 씌워주고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라고 외친다.
이때 2분간 사원의 종이 울리고, 호스 가즈 퍼레이드와 런던탑을 포함해 영국 전역과 지브롤터 등 영국령, 바다 위 선박 등에서 예포가 발사된다.
이후 영국 국교회 지도자들의 축복에 그리스 정교회 주교도 동참한다. 찰스 3세의 아버지 필립공은 그리스의 왕자였다.
찰스 3세가 왕좌로 옮겨 앉으면 오마주(경의) 의식이 진행된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먼저 충성을 다짐하면 뒤이어 윌리엄 왕세자가 왕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다음 순서로 귀족들을 불러내지 않고 대관식에서 처음으로 모든 이들에게 동참을 요청한다.
이어 커밀라 왕비도 성유 의식을 치르고 왕관을 쓴다. 이는 전통과는 달리 공개된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찬송가가 연주되고 참석자 모두 각자 자신의 언어로 주기도문 노래를 부른다.
예식이 끝나면 찰스 3세 부부는 보라색 예복으로 바꿔 입고, 찰스 3세는 제국 왕관으로 바꿔 쓴다.
이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밖으로 향할 때 문 앞에서 불교, 시크교, 힌두교, 이슬람, 유대교를 대표하는 성직자들이 축복한다. 이때 유대교 안식일을 존중해서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
찰스 3세 부부는 '황금마차'를 타고 '대관식 행렬'을 따라 버킹엄궁으로 돌아간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