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잊혀진 '소록도 벨기에 의사', 현지 교수가 단서 찾았다

입력 2023-05-05 06:45  

50년 잊혀진 '소록도 벨기에 의사', 현지 교수가 단서 찾았다
루뱅대 교수, 벨기에 외교사료 발굴해 韓대사관에 알려…정부, 검증 거쳐 훈장 결정
가슴에 훈장 단 백발 의사 "기억해줘서 감사…절대로 잊지 않을 것"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한국 관계와 관련된 벨기에 외교사료를 보던 중 '소록도 의료진 파견' 임무에 관한 글귀를 발견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아드리앵 카르보네(37) 루뱅대 한국학연구소장이 약 반세기 전 한국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20대 벨기에인 의사'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작년 10월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주벨기에 대사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카르보네 소장은 "당시 파견됐던 의사 2명 중 한 분이 아직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연락처를 구해 바로 전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몇 번을 갈아타고 그 의사가 거주하고 계신 왈롱(벨기에 남부 지역)까지 찾아가서 만났다"라고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이날 훈장을 받은 샤를 나베(81) 씨는 1966년 벨기에 '다미안 재단'과 한국 복지부 간 협약에 따라 파견 의료팀 소속으로 1967년부터 1971년까지 5년간 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특히 당시 벨기에에는 한센병 환자가 없어 파견 의료팀은 인도로 건너가 약 6개월간 사전 교육도 별도로 받고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서울에서 전라남도 광주까지 비행기를 타고, 그곳에서 4∼5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카르보네 교수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받은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은 이를 보건복지부에 전달했고, 정부 검증 결과 전부 사실로 확인되면서 나베 씨에 대한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가 결정됐다.
직접 발품을 판 현지 학자의 노력 덕분에 어쩌면 영영 묻힐 뻔한 나베 씨의 사연이 반세기 만에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카르보네 교수가 이날 대사관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 나베 씨와 함께 참석한 것도 이런 사연에서다.



그러나 그는 "나베 선생과 연락이 닿은 뒤 2∼3일 뒤에 윤순구 (주벨기에) 대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내일 바로 오시죠'라고 하시더라"며 "대사관과 한국 복지부 관계자 모두가 '원팀'으로 후속 절차를 정말 빨리 진행해줘서 감사드린다"고 정부에 공을 돌렸다.
7년째 벨기에와 한국 및 일본 간 외교 관계사를 연구 중이라는 카르보네 교수는 "그간 벨기에-한국 관계의 경우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서만 부각이 돼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사례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록도 의료진 파견에 앞서 벨기에에서 '사전 의료진'도 파견했던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후속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이날 훈장 수여식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나베 씨는 "기억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느덧 백발이 된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 차례 방한해 자신의 20대 청년 시절을 보낸 소록도에 가는 등 벨기에로 돌아온 뒤에도 한국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1980년대에는 벨기에 비영리기구인 '세상의 어린이'(Enfants du Monde) 설립에 기여, 부모가 없는 한국 아동들이 벨기에에 입양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도로도 없고 빈곤했던 한국이, 오늘날 이렇게 성장할지는 그땐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영광스러운 훈장을 받게 된 오늘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shi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